2022/12 12

(詩)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시인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 - 정호승 시인 잘 자라 우리 엄마 할미꽃처럼 당신이 잠재우던 아들 품에 안겨 장독 위에 내리던 함박눈처럼 잘 자라 우리엄마 산 그림자처럼 산 그림자 속에 잠든 산새들처럼 이 아들이 엄마 뒤를 따라갈 때까지 잘 자라 우리 엄마 아기처럼 엄마 품에 안겨 자던 예쁜 아기의 저절로 벗겨진 꽃신발처럼

현대시/한국시 2022.12.28

(詩)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 복거일 시인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 복거일 시인 옛날옛날 아주 먼 옛날 호랑이가 아직 담배 피우고 대보름엔 아이들이 마른 쇠똥을 불씨 삼아 논두렁을 태우던 시절 어느 두메산골에 가난한 내외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자잘한 걱정거리들을 잠 속으로 끌고 들어간 아내여,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우리 가슴은 얼굴 없는 두려움에 떨리지. 궁색한 살림의 냄새를 감추느라 늘 조심스러운 아낙, 내 지금 그대를 위해 무엇을 하리. 그저 그대 꿈속에 포근히 눈이 내리라 이렇게 이불깃을 여미는 것 말고는. 하여 눈이 내리기를, 감나무 가지들 무심히 늘어진 골목길에 거기 걸어가는 소녀 위에 아직 파릇한 꿈들이 일렁이는 그 가슴에 눈이 포근히 덮이기를. 지난날의 아린 기억들까지 이제 솜이불 같은 눈으로 내리기를. 그리고 세월..

현대시/한국시 2022.12.28

(詩) 자장가 – 이향아 시인

자장가 – 이향아 시인 어미 냄새 치마폭에 몇 알 감싸서 잠드는 어린 것들 이마 위에 얹는다 세세한 훈풍, 둥지에 가득 일어 혼자 떠나는 꿈길에도 길 잃지 말아라 잠나라 건널목의 파수꾼이여, 겁 많은 하린, 말 않는 환이, 꾀없는 준이입니다 아롱이 다롱이 한 소쿠리 소란한 밤톨들입니다 어둡지 않게 하소서 어미들의 젖은 신을 벗겨 주시고 그 손금마다 몇 다발씩 능금꽃을 피우소서 마늘 냄새 탱자냄새 행구는 물냄새 나들이 갔다가 돌아오는 치자꽃 냄새 내 엄마 행주치마 끄집어 내어 나도 어미 냄새 몇 알 감싸다 잠든 애들 머리카락 갈피마다 끼운다

현대시/한국시 2022.12.28

(시사) cnn의 한국인 고독사 관련 영문기사

기사 링크: https://edition.cnn.com/2022/12/18/asia/south-korea-godoksa-lonely-death-intl-hnk-dst/index.html South Korea’s middle aged men are dying ‘lonely deaths’ By Jessie Yeung and Yoonjung Seo, CNN Published 8:19 PM EST, Sun December 18, 2022 (CNN) — South Korea has a problem: thousands of people, many middle aged and isolated, are dying alone each year, often going undiscovered for days or week..

사람되기/시사 2022.12.19

(詩) 어머니의 배추 - 정일근 시인

어머니의 배추 - 정일근 시인 어머니에게 겨울 배추는 詩다 어린 모종에서 시작해 한 포기 배추가 완성될 때까지 손 쉬지 않는 저 끝없는 퇴고 노란 속 꽉 찬 배추를 완성하기 위해 손등이 갈라지는 노역의 시간이 있었기에 어머니의 배추는 이 겨울 빛나는 어머니의 詩가 되었다 나는 한 편의 詩를 위해 등 굽도록 헌신한 적 없어 어머니 온몸으로 쓰신 저 푸르싱싱한 詩 앞에서 진초록 물이 든다 사람의 詩는 사람이 읽지 않은 지 오래지만 자연의 詩는 자연의 친구가 읽고 간다 새벽이면 여치가 제일 먼저 달려와 읽고 사마귀가 뒤따라 와서 읽는다 그 소식을덛고 종일 기어온 민달팽이도 읽고 읽으면서 배부른 어머니의 詩 시집 속에 납작해져 죽어버린 내 詩가 아니라 살아서 배추벌레와 함께 사는 살아서 숨쉬는 詩 어머니의 詩

현대시/한국시 2022.12.14

(詩) 눈사람의 봄날 - 박서영 시인

눈사람의 봄날 - 박서영 시인 이사 다닌 집들이 눈사람처럼 녹아 사라져버렸다 환한 벚꽃이 깨진 창문을 잠시 엿보다 가버리고 이후의 긴 그늘에 대해선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 국도를 지나쳐, 지나쳐온 봄날이었다 길 고양이 한 마리처럼 도시 외곽에서 달을 분양 받았지만 나의 열망은 달과 태양을 제본하는 것 한겨울에 만든 눈사람을 한여름에도 들여다보는 것 태양의 밀짚모자를 쓴 채 달의 털모자를 쓴 채 태양과 달은 서로의 표정을 사각사각 베어 먹고 있다 그러나 천천히 녹아내리고 있는 뜨겁고 차가운 두 얼굴은 그냥 놔두시길, 괜한 관심으로 눈썹과 코와 입술을 그려 넣지 마시길, 지금은 눈사람처럼 녹아내리고 있는 집에 들어가 그 해의 환했던 벚꽃과 어느 여름밤의 뜨거운 포옹과 술렁이는 꽃그늘 따위를 모두 들고 ..

현대시/한국시 2022.12.07

(詩)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시인

링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1/18/2008011800034.html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애송시 100편-제14편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 정 희 www.chosun.com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시인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현대시/한국시 2022.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