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그때가 절정이다 - 천양희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8. 20. 18:21

우리집 텃밭의 분꽃

그때가 절정이다 천양희 시인

 

하늘에 솔개가 날고 있을 때

지저귀던 새들이 숲으로 날아가 숨는다는 걸 알았을 때

경찰을 피해 잽싸게 골목으로 숨던

그때를 생각했다

맞바람에 나뭇잎이 뒤집히고

산까치가 울면 영락없이 비 온다는 걸 알았을 때

우산도 없이 바람 속에 얼굴을 묻던

그때를 생각했다

매미는 울음소리로 저를 알리고

지렁이도 심장이 있어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알았을 때

슬픔에 비길 만한 진실이 없다고 믿었던

그때를 생각했다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살고

무명초는 씨앗으로 이름값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가난을 생각하며 살다에다 밑줄 긋던

그때를 생각했다

제 그림자 밟지 않으려고

햇빛 마주 보며 걸어갔던 시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아무도 돌보지 않는 고독에 바치는 것이 시라는 걸 알았을 때

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그때를 생각했다

 

돌아보면

그때가 절정이다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