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강변 마을 - 노향림 시인 (1942-)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8. 28. 19:51

강변 마을 - 노향림 시인

찻집 '째즈'에 올라간다.

카펫 붉게 깔린 삼층 계단 옆에서

제 몸집보다 큰  트럼펫을 들고

흑인 가수 루이 암스트롱의 커단 눈망울이

잠시 나를 노려본다.

 

브랜드 커피엔 하얀 각설탕을!

카푸치노? 아니, 아니

나는 블랙만 마실 거야

블랙혹이라는 말보다는 더 검은 커피를?

그럼 긓지, 검은 커피 한잔이

내 앞에 당도한다.

나는 강변 마을에 와서도

강변이 내려다보이는 창가가 참 좋다.

 

오늘따라 바람이 센지 짱짱한 구름떼만

하늘에서 펄럭인다.

 

브래지어가 흘러내리고

흰 속 치마가 절반쯤 뜯기고 찢겨나간

구름을 보는 것이 참 좋다.

 

아직 봄은 일러서 오지 않고

꽃샘바람에 눈꺼풀 닫은 채

종일 공중을 향해 팔을 벌리고

벌서듯 서 있는 나무들

매캐한 매연 속에

푸른 잎을 틔울까 말까 생각중이다.

그 슬픔을 하나의 보석으로 마음의

블랙홀에 켜놓았다.

나트륨등이 반짝 켜진다.

 

밝은 미색 커튼 흔들리는 창가에서

블랙커피나 한잔!

 

노향림 시집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2005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