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오늘 쓰는 편지 – 나의 멘토에게 – 천양희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9. 20. 21:57

 

오늘 쓰는 편지 나의 멘토에게 천양희 시인

 

순간을 기억하지 않고 하루를 기억하겠습니다

꽃을 보고 울음을 참겠습니다

우울이 우물처럼 깊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가장 슬픈 날 웃을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겠습니다

혼자 사는 자유는 비장한 자유라고 떠들지 않겠습니다

살기 힘들다고 혼자 발버둥 치지 않겠습니다

무인도에 가서 살겠다고 거들먹거리지 않겠습니다

술 마시고 우는 버릇 고치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울지는 않겠습니다

낡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젊은것들 당장 따끔하게 침 놓겠습니다

그러면서 나이 먹는 것 속상해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겠습니다

결벽과 완벽을 꾀하지 않겠습니다

병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하루를 생의 전부인 듯 살겠습니다

더 실패하겠습니다

 

천양희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