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면무식(免無識) - 박경리 소설가(1926-2008)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9. 28. 19:29

면무식(免無識) - 박경리 소설가(1926-2008)

 

밀짚모자를 쓰고

풀을 매는데

계분 실은 경춘원 차가 왔다

 

짐을 부리면서

손가락 하나 잘린

음성나환자 노인이

과수원 하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텃밭에 줄 거요

했더니

노인의 말이

부자인가 보다

 

아니요

유기농업을 해야 땅이 살지요

빤히 쳐다보며 노인은

시골 노친네가 제법 유식하다

 

호미를 들며

네 면무식免無識은 했지요

멀리 논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

 

박경리 시집 <우리들의 시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