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헛신발 - 신달자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11. 16. 11:54

헛신발 - 신달자 시인

 

여자 혼자 사는 한옥 섬돌 위에

남자 신발 하나 투박하게 놓여 있다

 

혼자 사는 게 아니라고

절대 아니라고

남자 운동화에서 구두에서

좀 무섭게 보이려고 오늘은 큰 군용 신발 하나

동네에서 얻어

섬돌 중간에 놓아두었다

 

몸은 없고 구두만 있는 그는 누구인가

형체 없는 괴괴(怪鬼)

다른 사람들은 의심도 없고 공포도 없는데

아침 문 열다가 내가 더 놀라

누구지?

더 오싹 외로움이 밀려오는

헛신발 하나

 

민음의 시 227, 신달자 시집, 민음사, 2016년, <북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