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그녀의 우편번호 - 김종해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11. 22. 13:58

아래의 시는 시집을 읽을 때 눈길을 사로잡았던 시이다. 앞에서 아버지를 다룬 詩가 있었으니 이번에는 어머니를 다룬 詩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소개한다.

 

그녀의 우편번호 – 김종해 시인

 

오늘 아침 내가 띄운 봉함엽서에는

손으로 박아쓴 당신의 주소

당신의 하늘 끝자기에 우편번호가 적혀 있다

길 없어도 그리움 찾아가는

내 사람의 우편번호

소인이 마르지 않은 하늘 끝자락을 물고

새가 날고 있다

새야, 지워진 길 위에

길을 내며 가는 새야

간밤에 혀 끝에 굴리던 간절한 말

그립다, 보고 싶다,

뒤척이던 한마디 말

오늘 아침 내가 띄운 겉봉의 주소

바람 불고 눈 날리는 그 하늘가에

당신의 우편번호가 적혀 있다

*

나는 오늘도 편지를 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이름

수신인의 이름을 또렷이 쓰나

어-머-니

*

새야,

하늘의 이편과 저편을 잇는 새야

사람과 사람 사이

그 막힌 하늘 길 위에

오작교를 놓는 새야

오늘밤 나는 그녀의 답신을 받았다

 

문학세계사, 2002, 김종해 시집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