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소리 – 도종환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11. 25. 12:35

소리 – 도종환 시인

 

걸음을 멈추고 나무 그늘로 들어서니

건넛산 뻐꾸기 소리가 들린다

웃옷 단추를 끄르니 엷은 바람이

손바닥으로 살을 쓰다듬으며 들어오고

 

걸음을 멈추고 저녁 하늘 올려다보니

음악학원 열린 창 틈을 빠져나온

첼로의 낮은 음이 바람의 활을

타고 내려와 귀를 적신다

 

내 목소리 너무 클 때는

빗소리 물결 소리도 안 들리더니

말을 멈추니 가까운 이의

한숨 소리에 섞여 있는 솔바람 소리도 들리고

 

가야 할 길만 생각할 때는

들리지 않던 소리가 멈추니 들린다

속도의 등을 타고 달릴 대 못 듣던 소리가

속도를 버리니 비로소 들린다

 

도종환 시집 <슬픔의 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