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종례 시간 – 도종환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12. 1. 14:11

종례 시간 – 도종환 시인

 

얘들아 곧장 집으로 가지 말고

코스모스 갸웃갸웃 얼굴 내밀며 손 흔들거든

너희도 코스모스에게 손 흔들어주며 가거라

쉴 곳 만들어주는 나무들

한 번씩 안아주고 가라

머리털 하얗게 셀 때까지 아무도 벗해 주지 않던

강아지풀 말동무해 주다 가거라

 

얘들아 돋장 집으로 가

만질 수도 없고 향기도 나지 않는

공간에 빠져 있지 말고

구름이 하늘에다 그린 크고 넓은 화폭 옆에

너희가 좋아하는 짐승들도 그려넣고

바람이 해바라기에게 그러듯

과꽃 분꽃에 입맞추다 가거라

 

애들아 곧장 집으로 가 방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잘 자란 볏잎 머리칼도 쓰다듬다 가고

송사리 피라미 너희 발 간질이거든

너희도 개울물 허리에 간지럼먹이다 가거라

잠자리처럼 양팔 날개 하여

고추밭에서 노을지는 하늘 쪽으로

날아가다 가거라

 

도종환 시집 <슬픔의 뿌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