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새아침의 기도 – 김종해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12. 8. 16:01

 

 

새아침의 기도 – 김종해 시인

 

아버지

새날로 시작되는 오늘 새 아침

깨끗한 희망 한 접시

햇살 한 접시

공기 한 접시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르게 하소서

가장 소박한 것의 은혜를

크게 깨닫게 해주시고

어제의 풀어지고 느슨한 나사를

오늘은 꼭꼭 죄어주소서

일하러 나가는 사람의 어깨 위에

기쁨과 보람을 더 얹어 주소서

우리 살아가는 일의 중심이

평범한 자의 행복에 있음을

치중해 주소서

슬픔이 있는 날

괴로움이 있는 날을 지내온 사람에게

더 큰 행운을 적용해 주소서

 

아버지,

하늘을 주시고 빛을 주시어

더 바랄 것이 없는

새날로시작되는 오늘 아침,

당신을 찬송하기에는 우리의 식탁에

너무나 빈 접시가 많이 놓여 있음을

당신은 보소서

우리 살아가는 일의 비바람 불고

천둥 번개치는 날은 견딜 수 있지만,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우리 사는 길목마다

재앙의 뇌관이 터지고

끊어진 길 위에서

허둥대는 사람들을 보소서

절망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을 보소서

우리 살아가는 길 위에서

암초를 거두소서

위험해, 위험해, 미리 경계하시고

그 뇌관을 지워주소서

하늘의 길, 땅의 길

물기도 길은 길이지만

남을 위해 일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길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소서

 

아버지, 새날로 시작되는 오늘 아침

깨끗한 희망 한 접시

햇살 한 접시

공기 한 접시

우리의 식탁 위에 가득하게 하소서

 

문학세계사, 2002, 김종해 시집 <>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