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팔월의 기도 - 신경림 시인(1935-)

밝은하늘孤舟獨釣 2024. 1. 11. 20:43

 

 

팔월의 기도 - 신경림 시인

 

내 목소리로

내 노래를 부르게 해주십시오

내 말로

내 얘기를 하게 해주십시오

내 형제를 형제라 부르게 해주시고

내 원수를 원수라 미워하게 해주십시오

온 땅에 깔린

하늘에 바다에 강에 널린 넋들이여

오월의 넋들이여 팔월의 넋들이여

내 꿈은 작고 소박합니다

사십년 동안 갈라져 있던 형제들 동무들 모여

아흔 낮 아흔 밤을 목놓아 우는 것

이 땅을 짓이기고 뭉개는 구둣발을

갈갈이 갈라놓고 찢어놓는 총칼을

내 노래 내 얘기 폭풍되어

몰아내게 해주십시오

형제를 형제라 부른다 해서

원수를 원수라 미워한다 해서

뭇매질하고 발길질하고 더러운 발들을

동해바다 한복판에 쓸어넣게 해주십시오

 

- 실천문학사에서 1988년, 2005년 펴낸 실천문학의 시집 50,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