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시) 어느 영혼을 위한 연미사 - 이정옥

밝은하늘孤舟獨釣 2025. 4. 18. 19:52

어느 영혼을위한 연미사 - 이정옥

 

1

 

오늘 우리가 당신 앞에

한 영혼을 보내드리오니

이 영혼을 외면하지 마소서

 

봄이면 불어대는 편서풍처럼

활활 타오르는 어둔 밤 불길처럼

사랑 하나 만나려 일생을 헤매인

그는 외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순결한 목소리로 자유를 찬미하다

율법에 쫓기고 돌팔매질 당해

십자가 등에 지고광야에 홀로 선

그는 서러운 영혼이었습니다

 

당신의 응답을 기다리다 지친

한편의 장엄한 서사시였고

한 곡조 미오나의 광시곡이었던

이 영혼을 외면하지 마소서

 

2

 

오늘 우리가 당신 앞에 

한 영혼을 보내드리오니

당신 품 안에 거두어 주소서

 

억눌린 백성의 통곡되어 외치다

배신당하고 피흘리면서도

당신 이름 부르기를 그치지 않은

그는 의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젊은이의 단죄론을 서글퍼하고

가진자의 오만을 가엾어하고

문명의 살인성을 한스러워 한

그는 맑은 영혼이었습니다

- 이정옥 시집 <채워지지 않은 잔이 더 아름답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