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 가을 억새 -정일근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10. 23. 23:04
가을 억새 -정일근 시인
때로는 이별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가스등 켜진 추억의 플랫폼에서
마지막 상행선 열차로 그대를 떠나보내며
눈물 젖은 손수건을 흔들거나
어둠이 묻어나는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터벅터벅 긴 골목길 돌아가는 그대의 뒷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이다
사랑 없는 시대의 이별이란
코끝이 찡해오는 작별의 악수도 없이
작별의 축축한 별사도 없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총총총
제 갈 길로 바쁘게 돌아서는 사람들
사랑 없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속에서
이제 누가 이별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겠는가
이별 뒤의 뜨거운 재회를 기다리겠는가
하산길 돌아보면 별이 뜨는 가을 능선에
잘 가라 잘 가라 손 흔들고 섰는 억새
때로는 억새처럼 손 흔들며 살고 싶은 것이다
가을 저녁 그대가 흔드는 작별의 흰 손수건에
내 생애 가장 깨끗한 눈물 적시고 싶은 것이다
'현대시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 정일근 시인 (0) 2022.10.24 (詩) 쌀 / 정일근 시인 (0) 2022.10.24 (詩)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 정현종 시인 (0) 2022.10.20 (詩) 위로 받고 싶은 맘 - 홍수희 시인 (0) 2022.10.09 (詩) 새로운 길 – 윤동주 시인 (0) 2022.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