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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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어느 영혼을 위한 연미사 - 이정옥현대시/한국시 2025. 4. 18. 19:52
어느 영혼을위한 연미사 - 이정옥 1 오늘 우리가 당신 앞에한 영혼을 보내드리오니이 영혼을 외면하지 마소서 봄이면 불어대는 편서풍처럼활활 타오르는 어둔 밤 불길처럼사랑 하나 만나려 일생을 헤매인그는 외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순결한 목소리로 자유를 찬미하다율법에 쫓기고 돌팔매질 당해십자가 등에 지고광야에 홀로 선그는 서러운 영혼이었습니다 당신의 응답을 기다리다 지친한편의 장엄한 서사시였고한 곡조 미오나의 광시곡이었던이 영혼을 외면하지 마소서 2 오늘 우리가 당신 앞에 한 영혼을 보내드리오니당신 품 안에 거두어 주소서 억눌린 백성의 통곡되어 외치다배신당하고 피흘리면서도당신 이름 부르기를 그치지 않은그는 의로운 영혼이었습니다 젊은이의 단죄론을 서글퍼하고가진자의 오만을 가엾어하고문명의 살인성을 한스러워 한그는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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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제야의 종을 - 이정옥현대시/한국시 2025. 4. 18. 19:46
제야의 종을 - 이정옥 제야의 종이 울리면미움의 가슴은 후회로 맑아지고분노의 목소리 축복을 뇌이나니소란으로 뒤덮힌 명동거리에참회의 종소리 여울지게 하소서 제야의 종이 울리면가난한 이들은 기쁨으로 설레고이별한 사람들 그리움에 젖나니황량한 촌락 잠든 마을에도감사의 종소리 퍼지게 하소서 폭풍 몰아치는 늪을 헤매이다당신의 손목을 놓친우리는 길 잃은 철새들이니당신의 옷자락에 포근히 감싸혼돈의 이 밤을 밝혀주소서 무대는 바벨탑배우는 현대인관객은 오직 당신 한 분 살해된 인식의 시체를 깔고 앉아미친 듯 광란의 춤을 추고 있는우리는 가련한 미아들이니 당신의 한 말씀 뜨거운 사랑으로죄악의 고리들을 풀어헤치소서 제야의 종소리 누리를 뒤덮어죄인의 영혼들 건져 올리소서 - 이정옥 시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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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두려움 없이 - 이정옥현대시/한국시 2025. 4. 18. 19:41
두려움 없이 - 이정옥 죽음이 창 밖에서 머뭇거릴 때두려움 없이 문을 열게 하소서지난 날들은 축복이었습니다봄날은 얼마나 다사로웠습니까꽃들이 다투어 핀 뜰에서당신을 잊고 산 그 행복했던 날들 죽음이 깊은 밤 문을 두드럴 때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게 하소서지난 날들은 은총이었습니다빈 잔은 어느 사이 가득 채워지고떠날 벗들이 돌아온 뜰에서비로소 당신의 섭리를 깨우치던감동과 기쁨의 숱한 만남들 죽음이 떠나기를 재촉할 때조용한 목소리로 말하게 하소서젊은 날 사랑의 아픔들은당신이 마련한 시련이었고노년에 주신 외로운 밤들은보속을 위한 기도의 시간임을이 모든 날들을 허락하신당신께 기꺼이 나아가리이다 우리가 숨을 거둘 때우리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여당신 곁으로 불러주시리라 믿습니다벗들의 슬픔이 멎기도 전에우리의 영혼을 품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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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처방 - 한성기현대시/한국시 2025. 3. 24. 10:23
아래의 시는 오늘 아침 오랜 만에 들린 KBS Happy FM의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나도 십여전 전에 불면증으로 한참 고생한 적이 있어 공감이 가는 시이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처방 - 한성기 잠이 오지 않았다석 달 열흘을 아무리 애써보아도잠이 오지 않았다 병원과 약방을 찾았으나나를 잠들게 하지 못하는 약들밤이면 안경 너머로내 병을 짚던 의사의 얼굴 잠이 오지 않았다사람의 수단과 방법의 한계 산을 향해 떠났다 마을이 멀어져 가고세상이 멀어져 갔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어져가고차바퀴 구르는 소리가멀어져갔다병원도약방도 산에 도착하던 날부터쿨쿨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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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봄밤 - 김사인현대시/한국시 2025. 3. 21. 20:56
봄밤 - 김사인 나 죽으면 부조돈 오만원 내야 돼 형, 요새는삼만원짜리도 많던데 그래두 나한테는 오만원은 내야 돼알었지 하고 노가가 이아무개가 수화기 너머에서홍시 냄새로 출렁이는 봄밤이다. 어이, 이거 풀빵이여 풀빵 따근할 때 먹어야 되는디,시인 박아무개가 화통 삶는 소리를 지르며점잖은 식장 복판까지 쳐들어와 비닐 봉다리를 쥐어주고는우리 뽀뽀나 하자고, 뽀뽀를한번 하자고꺼멓게 술에 탄 얼굴을 들이미는 봄밤이다 좌우간 우리는 시작과 끝을 분명히 햐야여 자슥들아 하며용봉탕집 장 사장이리단 애국가 부터 불러제끼자하이고 우리집서 이렇게 훌륭한 노래 들어보기는츰이네유 해싸며 푼수 주모가 빈자리 남은 술까지 들고 와연신 부어대는 봄밤이다 십만 원인데 십만 원만 내세유, 해서 그래두 되까요 하며지갑을 뒤지다 결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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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사투리 속에는 고향이 있다 - 노태웅현대시/한국시 2025. 1. 25. 11:44
아래의 시는 1월 23일 아침 라디오 Happy FM 《주현미의 러브레터》의 "마음에 스며드는 느낌 한 스푼"에서 소개된 시이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사투리 속에는 고향이 있다 - 노태웅 가버린 시간 속에 그리움 번지면세월 속으로 사라진 말들이 생각난다지방마다 가지는 독특한 억양타향에 오래 머물러 퇴색되었어도고향의 언어는 기억 속에 남아있다어디 숨어있는지도 모르는낯설지 않은 고향 사람들몇 마디 말로 친구를 찾고정다운 고향을 찾는다어디 살었어유∼, 누구라구유∼사투리 속에는 고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