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은 부엌 노래 / 문정희현대시/한국시 2011. 1. 23. 17:57
작은 부엌 노래 / 문정희
부엌에서는
언제나 술 괴는 냄새가 나요.
한 여자의
젊음이 삭아가는 냄새
한 여자의 설움이
찌개를 끓이고
한 여자의 애모가
간을 맡추는 냄새
부엌에서는
언제나 바삭바삭 무언가
타는 소리가 나요.
세상이 열린 이래
똑같은 하늘 아래 선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큰방에서 큰소리 치고
한 사람은
종신 동침계약자, 외눈박이 하녀로
부엌에 서서
뜨거운 촛농을 제 발등에 붓는 소리.
부엌에서는 한 여자의 피가 삭은
빙초산 냄새가 나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모르겠어요.
촛불과 같이
나를 태워 너를 밝히는
저 천형의 덜미를 푸는
소름끼치는 마고할멈의 도마 소리가
똑똑히 들려요.
수줍은 새악시가 홀로
허물 벗는 소리가 들려와요.
우리 부엌에서는 ……
'현대시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널 만나고 부터 / 이생진 (0) 2011.03.12 마누라 음식 간 보기 / 임보 (0) 2011.03.12 알몸 노래 / 문정희 (0) 2011.01.23 유방 / 문정희(1947-) (0) 2011.01.23 비가(悲歌) - 신동춘 시인 (1931-) (0) 2011.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