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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 어느 네티즌이 광화문 집회와 관련해 페이스북에 남긴 글 <전 의경 출신입니다>
    사람되기/시사 2015. 11. 18. 15:58


    이하는 어느 네티즌이 2015년 11월14일 광화문 집회와 관련하여 본인의 생각을 페이스북에 남긴 글인데 2015 1118일자 국민일보에 실렸다가 얼마 안 있어 인터넷에서 사라진 글이다.

     

     

    <전 의경 출신입니다>

     

     

    주변 분들은 지겹게 들으셨겠지만 난 의경 출신이다. 자대를 가서 처음 겪은 시위는 끝날 무렵의 광우병 촛불시위였다. 일상에서 유리되어 있던 정치적 이슈가 내 일상 속으로 급작스레 파고 들어온 것이다. 평택 쌍용자동차, 화물노조 파업 등을 거치며 가장 인상이 깊게 남아 있는 건 2009, 대전 법동에서 있었던 시위였다. 말 그대로 죽창이 머리 위로 날아들고 중대가 박살이 나는 경험을 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다. 내가 서있던 세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아마 그 시위 전에 자살한 노조원이 있었고, 그를 기리고 하는 과정에서 시위가 격화된 모양이라 이해가 갔다. 나도 친구나 동지가 그리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겠지.

     

    각설하고 그 날의 시위는 만여 명 정도가 참여했다. 만 명이 모인 만큼 군상들도 다양했다. 의경들을 일으키고 보호하는 시위대 아저씨도 있었고, 죽창을 내려치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런 저런 사람들이 있었다. 각자 내는 목소리도 다양하고 시위대들끼리 다투기도 한다. 각자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런 다양성은 필연적이다.

     

    만 여명이 모여도 이럴진대 어제 같은 10만 이상의 대규모 시위라면 필연적으로 이런 저런 목소리가 다 터져 나온다. 언론에서는 개중 있었던 폭력적인 모습이나 이석기 석방 같은 것을 물고 늘어지며 불법폭력집회임을 강조하는 모양새지만 시위현장에 있다 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느끼기 힘들다. 순간을 포착한 몇 장의 사진, 짧은 동영상, 알량한 법규정을 들이대며 평화적으로 하라라는 메시지를 끊임 없이 던져댄다. 객관적인 사실 아니냐 하며 그쪽에서 좋아하는 팩트 중심주의를 펼치지만, 내가 보기엔 그건 팩트가 아니다. 취사선택 된 사진과 동영상, 법규위반들만 있을 뿐, 선동이라 말하지만 뭐가 더 선동적인지 자명하다. 제대로 판단할 기회도 주지 않는다. 시위가 던지려는 메시지 보다는 방식과 외연에만 천착한다.

     

    불법이니 합법이니 하며 법만 따지는 모습이 어제오늘은 아니다. 하지만 현장엔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없다. 외치고자 하는 자와 입을 막으려는 자만 있다. 때문에 무임승차자 같은 언론, 경찰, 정부의 합법타령이 역겹다. 애초에 10여 만 명의 집회시위 과정에서 쇠파이프나 종북 메시지는 따라다닌다. 그러나 이런데 집착해서 시위자체가 갖는 메시지를 왜곡하고 비틀어선 안 된다. 얼굴에 각질 좀 붙었다고 더러운 놈으로 치부 받진 안잖아.

     

    어제 시위의 요구사항은 다양했지만 기본적으로 국정교과서 이슈와 노동개혁에 대한 것들이 큰 줄기를 차지한다. 이것들이 갖는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니네 맘대로만 하지 말고, 우리 얘기 좀 하자!’ 작금의 정국을 보면 대체 여론수렴은 언제 하시고 소통은 언제 하시는지 모르겠다. 내가 알기로 청와대가 여론수렴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이슈는 선물 받은 진돗개 이름짓기 정도였던 거 같다. 시위가 갖는 메시지와 왜 그런 메시지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고 고민해야지 10만 명 중 일부가 보인 모습에 천착하는 건 사람을 무슨 제품으로 보는 듯해서 불편하다. 공장 가서 불량을 따지는 거 같다.

     

    사람은 자유가 제일 중요한 동물이다. 10여 만 명이 자발적으로 모여 시위를 한다는 건 그 자유의 상징이다. 시민으로서, 국민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는 건 민주주의의 기본요소다. 그런 현장에 차벽을 치고 물대포를 직격으로 쏘아대는 모습은 그분 유년기의 추억으로 치워놓아 두셨으면 했는데 그분에겐 추억이 아닌 현실인 모양이다. 시위대가 먼저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 하겠지만 현장에선 대규모집회끼리 충돌한다. 누가 먼저 때렸냐 같은 개인간의 폭력에 대해 형사적 판단을 내리는 과정을 여기에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 앞서 말했듯, 군중이 모이면 군중의 머릿수만큼이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온다. 그런 목소리를 한 올 한 올 따다가 종북이네 빨갱이네 불법이네 하는 건 새치 한 가닥 나왔다고 넌 흰머리가 되었다 하는 거랑 뭐가 다른 지 모르겠다. 이석기 석방을 외친다 한들 외칠 자유는 보장하는 게 민주주의 아니던가?

     

    한국헌법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는 있지만, ‘오빠가 좋아하는 페미니즘같다. 집회결사라는 건 약자가 강자에게 대항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 중에 하나인데 그것조차도 강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규의 테두리 안에서만 행해져야 한다면, 우리는 이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는가? 소통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자유라는 옷을 입히고 너는 자유롭다라고 말하는 건 오만하고 불쾌하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무색하다. 참담한 건 난 어제 그 시간에 술 마시며 놀고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 부끄럽다. 이런 글을 쓰는 것조차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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