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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학) 도서명: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사람되기/인문학 2018. 1. 23. 22:12

    서명: <하느님을 기다리는 시간>

    저자: 토마시 할리크

    역자: 최문희

    출판사: 분도

    기간: 20171216일부터 2018118일까지.

     

    9: 나는 무신론자들에게 동의할 때가 많다. 단 하나,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믿음만 빼고는 종종 거의 모든 점에 동의한다.

    11: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는 밤, 삶과 세상이 불확실로 가득 찬 순간 신앙이 필요하다. 이 때, 신앙이 하는 일은 확실성과 평안에 대한 목마름을 달래주는 게 아니라 신비와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14: 모름지기 성숙한 신앙은 신의 죽음 혹은 신의 침묵을 자기 안에 녹여야 한다.

    15: 사도 바오로의 정신을 따르는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몸에서 무신론의 가시가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선 안 된다.

    24: 자캐오는 개인주의자나 아웃사이더처럼 보일 수 있으나, 사람들이 열광하거나 분노하는 무리에 합류하려다 돌무화과나무에 몸을 숨긴다. 그건 그가 교만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과 결함을 알고 있었으며, 누군가 자기를 불러주면 기꺼이 사생활과 집착을 버릴 생각이었다.

    27: 철학자 에릭 푀겔린Eric Voegelin의 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큰 문제는 정답을 갖고 있는 않은 게 아니고 그 정답에 대한 질문을 잊은 것이다.

    29: 하느님께서는 내 종교적 확신들 중 많은 걸 허무셨다. 틈이 생긴 순간, 확신이 흔들리던 순간, 점점 더 많은 물음과 의심이 솟던 순간, 바로 이 때 분명하게 당신의 얼굴을 보여주셨다.

    30: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 마음에 있는 신념의 열매다.

    39: 자기 안에 닫혀 만족한 배부른 이들, 확신에 찬 이들, 자신만만한 이들 틈에 안 끼고, 가난한 마음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

    60: 신앙은 불신앙을 끌어안음으로써만 불신앙을 극복할 수 있다.

    77: 한 분이신 보편적인 하느님이시기에, 그분은 우리가 독점할 수 있는 하느님이 아니다.

    80: 하느님을 동산(動産)처럼 취급하여 하느님을 우리의 자산으로 여기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이는 하느님이 우리의 하느님이기도 하고 다른 이들의 하느님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81: 아무도 하느님을 독점할 수 없다. 하느님은 구도자들의 하느님, 여정 중에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기도 하다.

    107: 교회는 가족 같은 친밀함을 대신할 수 없으며 마음 맞는 이들의 동아리가 될 수 없고, 거룩한 이들의 엘리트집단도 아니다.

    108: 교회 안에서 사는 삶에도 많은 인내, 충실, 너그러움, 유머, 관용이 필요하다.

    115: 질서 없는 자유는 실패하고 자유 없는 질서는 불가능

    117-118: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인지 알 수 있는 좋은 척도는 세속 인본주의자들을 적이 아닌 형제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119: 자유와 질서가 함께 있어야 하듯, 그리스도교신앙과 계몽주의 유산인 세속 인본주의와 비판적 합리주의도 함께 있어야 한다. 비판적 물음이 없는 신앙은 근본주의나 광신주의에 빠질 수 있다. 신앙세계의 영적 윤리적 자극이 없는 합리주의는 편향적이고 냉소적 실용주의나 회의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125: 오리게네스 왈: 하느님께서 모순되는 성경 구절들을 그대로 두신 것은 성경을 자구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면 언제나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이다.

    128: 비록 호전적 무신론의 갑옷을 입고 있더라도 인간의 고통은 신앙인들이 진지하게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것.

    133: 어떤 진리들은 말하는 시점이 안 좋으면 당혹스럽고 공허한 상투적인 말이 될 뿐 아니라 모욕과 상처까지 줄 수 있다.

    136: 인내는 신앙의 두 요소인 신뢰와 충실로 이뤄진다. 신앙과 인내는 다른 이름일 수 있다.

    184: 마르틴 하이데거는 기술은 모든 거리를 극복했으나 어던 친밀함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일갈했다.

    185: 흔들리지 않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

    213: 구원은 보답이 아니라 선물이다. 예수님은 당신 구원의 선물을 강요하러 오신 게 아니라, 자캐오가 먼저 이런 걸 해야 살 수 있는 상품처럼 구원을 제시하지 않으셨다.

    229: 자신의 죄를 깨달을 수 있다는 건 이미 죄의 감옥 밖에 나와있다는 뜻.

    230: 내 죄가 보일 때는 낙담하지 말고 그 죄를 인정하게 해주는 빛의 근원을 봐야 한다. 자신의 죄를 분명히 볼 수 있는 건 성인(聖人)의 특권. 성인은 자기의 죄 때문에 진심으로 슬피 울기고 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찬미하는 법도 아니까. 앤소니 드 멜로 왈, 세상과 나에게 큰 일을 하실 수 있는 하느님의 힘을 못 믿는 게 비극적인 죄, 성령을 거스르는 죄.

    235: 루이스C.S. Lewis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The Screwtape Letters> 진정으로 사유하는 자는 누구든 이미 원수(하느님)의 근거지에 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고 신앙을 버린 사람은 만나지 못했는데, 주임신부의 멍청한 강론 때문에 신앙을 버린 사람은 많이 보았다. 상급악마는 사람들이 진정한 슬픔이나 참된 기쁨을 느낄 때 혹은 오래된 물방아간을 어느 조용한 가을 산책하며 지날 때 즐거움을 느낄 때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이런 순간에 사람들은 저 위에있는 원수에게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242: 구도자요 철학자인 시몬느 베이유. 지독한 수모를 대가로 진실을 아는 것.

    252: 익명의 믿음타인에 대한 사랑은 상대를 참고 기다리는 데서 진정성이 드리나고 입증되듯, 믿음도 드러나지 않아 익명일지라도 삶의 모든 역경과 모호성 앞에서 인내의 형태로 존재한다.

    254: 신앙의 성전도 가장 어둡고 텅 빈 공간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 하느님과 그분의 영관이 가장 충만하게 머무시는 곳이 바로 어둡고 텅 빈 이 공간이다.

    255: 시몬느 베이유 왈, 사랑하는 이가 모르게 섬기는 일은 사랑의 가장 오묘한 기쁨인데, 하느님 사랑과 관련해서는 무신론을 통해서 가능하다.

    256: 중요한 건 자네가 하느님을 믿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네를 믿으신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한 걸세.

    258: 마이스터 에카르트 왈, 우리가 하느님을 보는 눈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눈.

    263: 믿음은 숨을 쉬어야 한다. 믿음에는 낮도 밤도 있다. 하느님께선 말과 침묵으로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선 친밀함뿐 아니라 소원함 통해서도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 소감 **

    이 책에 대해 얘기를 처음 들은 것은 제작년인가 이종사촌형님과 대화 도중, 그 형님이 자기가 감명깊게 읽었다고 얘기를 해서, 스마트폰에 입력해두었다가, 내 눈에 이 책이 뜨여 읽게 되었다. 그런데 내게는 번역이 엉성해 읽기 힘들었다. 한 달 이상 걸렸다.

    진리, , 신앙을 찾고 갈구하지만 진리나 신이나 신앙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나 태도를 취한 세속적 인본주의자들, 무신론자들 같은 오늘날의 자캐오도 우리 기성 신앙인은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신앙감각이 균형을 이룬다. 뭐 이런 게 이 책의 요지요 저자가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다 보니, 저자는 다소 리버럴liberal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쩌면 리버럴과 콘설버티브의 중간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리버럴함이 위험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정당해 보인다. 우리 한국 천주교의 현실이 너무 삭막하고 고리타분하고 콘설버티브conservative해서 그런 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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