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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샛강 – 노향림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9. 20. 21:54
샛강 – 노향림 시인
봄이 풀어진 눈매로 강 둔치에
포복해오고 헝클린 머리 강이 파랗다.
실버들이 기지개를 켠다 제 몸 속의
물소리 바아내느라 파랗다.
봄이 제 갈 길 멀다고
절두산 성지 아래 희끗희끗한
잔해로 남았다 안색이 창백한
갈대의 머리채를 잡고
막무가내로 흔든다 무슨 일일까.
누군가 시름시름 앓다가 내버린
마음속의 그루터기들이 집착처럼 남았다.
몸의 가는 신경올을 건드렸을까.
물은 사방 낮게 흐른다.
할로겐 불빛 희미한
비공개 지하 성인묘지 앞 계단에서
대낮부터 한 노파가 무릎 꿇어
일어날 줄 모른다 몇끼의
금식으로 십자성호를 그을까.
우수(雨水) 지나 움츠렸던 청청하늘이
성급히 창문 여닫는 소리.
당산 지나 옛 나루터 자리
간 곳 없고 양화대교만 차들이 어지러이
달려서 소란스럽다.
뒤돌아보면 뿌연 광목천 같은 샛강도
덩달아 서해로 서해로 빠져나간다.
노향림 시집 <해에게선 깨진 종소리가 난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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