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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 문정희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0. 5. 08:21
할머니 - 문정희 시인
누구나 할머니를 좋아하지만
할머니가 되는 것은 싫어한다네
눈물로 만든 달이
딸이 되고
어미가 되고
가을엔 땅을 다독이는
낙엽 같은 손을 가진
할머니가 되지만
태고의 바람처럼 그윽한 할머니의 기도를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지만
참 이상도 하지
아픈 배를 문지르던 따스한 약손
부드러운 영토
할머니가 되는 것은 슬퍼한다네
갑자기 다가든 추운 날씨에
할 수 없이 끌어당겨 덮고 가야 할
포근한 담요처럼
평화로운 옛이야기 같은 할머니가
시시각각 곁으로 다가드는 것을 두려워한다네
문정희 시집 <나는 문이다> 중에서
읽은 소감
안티에이징anti-aging을 선호하는 요즘 세상에서 늙는다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일이나, 어디 그게 가능한가? 나부터 늙어감을 사랑할 일이다. 늙음을 참 인상적으로 표현했고, 두고 두고 읽고 싶고, 지인들에게도 나누고 싶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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