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탯줄 - 문정희 시인(1947-)현대시/한국시 2023. 10. 5. 12:20
탯줄 - 문정희 시인(1947-)
대학병원 분만실 의자는 Y자였다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는
새끼 밴 짐승으로
두 다리 벌리고 하늘 향해 누웠다
성스러운 순간이라 말하지 마라
하늘이 뒤집히는
날카로운 공포
이빨 사이마다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불인두로 생살 찢기었다
드디어
내 속에서 내가 분리되었다
생명과 생명이 되었다
두 생명 사이에는
지상의 가위로는 자를 수 없는
긴 탯줄이 이어져 있었다
가장 처음이자
가장 오래인 땅 위의 끈
이보다 확실하고 질긴 이름을
사람의 일로는 더 만들지 못하리라
얼마 후
환속한 성자처럼
피 냄새 나는 분만실을
한 어미와 새끼가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왔다
문정희 시집 <나는 문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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