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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재 1회] 당신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外현대시/시창작 관련 2009. 6. 21. 21:12
임 보 시인의 알기 쉬운 시 창작교실
당신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연재 1회]
임 보 (시인 • 전 충북대 교수)
[시작하며]
이 글은 시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쓴 시 창작에 대한 안내서입니다. 이론적인 책들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딱딱함을 덜기 위해 서간체 형식으로 엮었습니다.
시인인 저자가 시를 알고자 하는 『로메다』라는 한 젊은이에게 좋은 시를 쓰는 요령에 대해 일러주는 편지글입니다.
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세계와 삶에 대한 사색적인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시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세계관과 인생관 형성에 도움을 주고자 해서입니다.
이 글은 애초에 인터넷을 통해 연재되었던 것인데 독자들의 요구에 의해 다시 월간 『우리詩』에 연재하게 된 것입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이들의 시와 세상에 대한 안목이 크게 열리기를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2008년 3월
임 보 씀
[제1신]
당신도 좋은 시를 쓸 수 있다.
로메다 님.
오늘 아침 메일박스를 열었더니 ‘로메다’라는 낯선 이름의 당신 편지가 떠올랐어요.
유난히 큰 눈을 가진 황갈색 점박이 어린 사슴의 무늬가 새겨져 있는 아름다운 편지지가 우선 내 마음을 평화롭게 했습니다.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서 내 시를 읽고 관심을 갖게 되고, 내가 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교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고요?
로메다 님,
보잘 것 없는 내 작품을 관심 있게 읽어주었다니 우선 고맙다는 인사부터 해야겠군요.
시를 좋아한다니 반갑습니다.
가능하다면 시를 써 보고도 싶은데 아무나 시를 쓸 수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와 유사한 질문을 나는 학생들로부터 자주 듣습니다. 아니, 나도 시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했던 청소년 시절 스승이나 시의 선배들에게 그런 질문을 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그 질문에 대한 대답부터 하고 그 다음의 얘기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로메다 님,
당신도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더 적극적인 답변을 요구한다면, 당신도 좋은 시를 얼마든지 쓸 수 있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로메다 님,
시를 쓰는 일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는 사람에 제한이 없듯이 시를 쓰는 사람 역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들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즐기며 삽니다.
그러나 로메다 님, 그림을 즐기는 모든 사람들을 우리는 화가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많은 이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그림을 잘 그리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만이 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언어를 가지고 시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를 쓰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져 있지만 훌륭한 시인이 되는 것은 타고난 재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후천적인 노력의 중요함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물론 노력이 중요하지요. 세상에는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노력하지 않고 성공한 사람들은 이 지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남다른 재능은 타고났더라도 노력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의 머리 위엔 눈부신 승리의 월계관은 씌워지지 않습니다. 비록 타고난 재능은 보잘것없더라도 열심히 정진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주위가 부러워하는 축복을 누리게 되지 않던가요?
시의 재능을 비록 적게 타고났더라도 심혈을 기울여 시의 길을 간다면 좋은 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인 시인이 되는 것은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스포츠를 좋아하나요? 세계적인 농구 선수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아무리 농구를 좋아하고 열심히 노력해도 세계적인 농구 선수가 되려면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합니다. 즉 긴 신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농구라는 운동에서는 신장의 조건이 슛이나 리바운드 등 모든 경우에 절대적으로 작용합니다.
물론 키 작은 사람도 열심히 연습하여 농구 선수가 될 수 없는 바는 아닙니다. 단신短身으로도 학교나 지역의 대표선수쯤은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단신의 벽을 넘고 세계적인 선수로 올라서기는 지난至難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장을 위시해서 육신의 여러 기능들은 대체로 선천적으로 타고납니다. 마찬가지로 정신의 기능들도 선천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시를 만드는 기능에 있어서도 타고난 시적 재능이 없을 수 없습니다. 사물에 대한 인식의 감각, 상상력, 그리고 언어 구사의 능력 등 그런 탁월한 시적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이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을 때 세계적인 시인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로메다 님, 실망하셨나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세계적인 위대한 시인이 되겠다는 너무 큰 꿈을 갖지 않는다면 조금도 실망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시적 재능을 많이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당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당신의 친구와 이웃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시들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당신이 시를 좋아하는 것이 어쩌면 시를 잘 쓸 수 있는 소질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누가 압니까? 바로 당신이 탁월한 시적 재능을 타고났는지― 바로 당신이 이제 막 알에서 깨어난 미래의 위대한 한 시인인지― 아직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오늘은 이만 씁니다.
좋은 꿈 많이 꾸세요. 로메다 님!
[제2신]
도대체 시란 어떤 글인가?
로메다 님,
내가 보낸 글을 읽고 시를 쓰고 싶다는 신념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니 반갑기는 합니다만, 내가 괜히 조용한 사람의 가슴속에 바람을 불어넣어 ‘시의 병’을 앓게 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군요.
이번엔 '도대체 시가 어떤 글인가’ 일러달라고 청하셨지요? 평범한 질문 같기는 합니다만 답변이 쉽지 않군요. 한평생 시에 매달려 살아온 나인데도 로메다 님이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은 시시각각으로 변해갑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구한 세월을 놓고 보면 태산준령도 놀랍도록 변화합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등뼈라고 불리는 거대한 로키산맥은 수억 년 전에는 바다 속에 묻혀있던 흙덩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구한 세월을 두고 천천히 솟아올라 지금 우리가 보는 수천 미터의 웅장한 바위산들이 된 것입니다.
산천이 우리 눈에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 것은 그 변하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뿐입니다. 거대한 바위는 부서져 작은 모래알들이 되고 푸른 강물은 메말라 거친 사막이 되기도 합니다. 자연의 변화가 이렇거늘 하물며 인간들의 손으로 빚어 만든 문명의 족적들은 얼마나 덧없이 변하겠습니까? 한 세기를 버티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10년, 아니 1년이 멀다하고 바뀌고 혹은 사라지고 말기도 합니다.
너무 서두가 길어졌나요? 그럼 이제 다시 시의 얘기로 되돌아가도록 합시다. 그동안 시라는 글도 많은 변모의 길을 걸었습니다. 언제부터 인간들이 시라는 형식의 글을 쓰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은 BC 2000년경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유적으로, 점토판에 설형문자로 새겨진 「Gilgamesh Epoth」라는 기록입니다. 길가메쉬라는 한 영웅의 모험을 찬양하는 내용의 서사시라고 합니다.
동양에서는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시경詩經』을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서주西周 초기(BC 11세기)로부터 동주東周 중기(BC 6세기)에 이르는 약 500년 동안의 노래들을 모은 것이므로 오래된 것은 BC 1000년경의 것도 있겠습니다.
우리의 시가詩歌로 오래된 것은 고구려 유리왕의 「황조가黃鳥歌」를 드는데, 제작 년대를 겨우 BC 17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답니다. 우리 시가의 역사가 그렇게 늦은 것은 우리 민족이 시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였다기보다는 우리의 고유한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다만 기록에서 뒤진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만큼 노래를 즐기는 민족도 드뭅니다. 우리의 번창한 ‘노래방’ 문화가 좋은 증거가 되지 않습니까?)
기록은 이렇게들 남아 있지만 문자를 사용하기 전의 노래들까지를 시의 남상濫觴이라고 본다면, 시의 역사는 어쩌면 만년을 헤아리게 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 유구한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시라고 불릴 수 있는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변해왔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경우를 한번 간략히 살펴볼까요?
나는 우리시의 출발을 샤먼[무격巫覡]의 주사呪詞 곧 '천지신명께 기원하는 말'에까지 거슬러 올라가고자 합니다만, 이 자리에서는 일단 접어두고라도 「황조가黃鳥歌」나 「구지가龜旨歌」와 같은 고대시가로부터 시작하여 신라의 향가鄕歌를 거쳐 고려의 가요歌謠 그리고 조선조를 지내면서 시조時調와 가사歌辭 문학 등으로 발전합니다.
한편 고려 이후부터 구한국 말에 이르기까지 시 장르의 본령은 한시漢詩가 점령해 왔습니다. 우리 고유의 시는 거의 노래와 함께 공존해 온 상태입니다. 우리 시가 노래로부터 독립된 것은 겨우 20C에 들어와서부터입니다. 20C 초에 싹이 텄던 소위 신체시가 자유시로 자리 잡은 것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그리고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현대적 특성을 지닌 자유시로 크게 발전하게 됩니다.
한 지역에서의 시의 변천하는 모습도 이렇거늘 세계의 모든 지역들에서 변모해온 시의 양상을 살펴본다면 얼마나 복잡하고 다양하겠습니까? 천 년 전 당나라의 이백李白이 생각했던 시와 백 년 전 독일의 릴케가 생각했던 시는 얼마나 거리가 멀겠습니까? 그야말로 천양지차天壤之差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시대의 시라고 해도 지역에 따라 다 다릅니다. 서양의 시와 동양의 시가 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서구라도 프랑스의 시와 영국의 시가 같지 않고, 같은 동양이라도 중국의 시와 한국의 시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동일한 시대 동일한 지역이라고 해도 개인에 따라 얼마나 차이가 있던가요?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소월素月과 이상李箱의 시가 얼마나 다른가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역대의 수많은 시인들과 시 이론가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에 대한 정의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정의들 가운데 보편타당한 정의는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이 내린 정의는 다만 그가 살았던 당대의 그가 체험한 시에 대해 주관적인 견해를 피력했을 뿐입니다.
앞으로의 어느 누구도 시공을 초월한 금과옥조金科玉條의 시에 대한 불변의 정의를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시는 계속 변해갈 것이니까요.
로메다 님,
정의를 내릴 수 없다는 내 얘기를 듣고 실망하셨나요?
그러나 로메다 님, 너무 실망할 것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시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절대 불변의 정의는 불가능하지만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람직한 시’에 관해서는 들려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의 얘기가 너무 번거롭게 길어졌으므로 ‘바람직한 시’에 대한 나의 견해를 들려주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되겠군요. 즐거운 나날 지내세요.
P. S. : 역대의 저명한 사람들이 내린 시에 대한 정의들 가운데에서 몇 개 골라 첨부 파일로 보냅니다. 내가 <시론> 강의를 할 때 학생들에게 보여준 참고 자료입니다. 귀찮으면 읽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읽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더라도 당황해 할 것 없습니다. 그러나 버리지는 마시고 간직해 두시기 바랍니다. 언제 필요한 경우 들추어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혹 있을지 모르니까요.
◈시에 대한 정의들
“시는 운율적인 언어에 의한 모방” ―Aristotle『Poetics』
“좋은 시는 힘찬 감정의 자연적 발로” ―W. Wordsworth『Lyrical Ballads』서문
(For all, good poetry is the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
“시는 영원한 진실 속에 표현된 삶의 이미지” ―P. B. Shelly『Defence of Poetry』
(A poem is the very image of life expressed in it`s eternal truth)
"시는 상상과 정렬의 언어” ―W. Hazlitt『Lecture on the English Poets』
(Poetry is the language of the imagination and the passions)
"시는 미의 운율적 창조” ―E. A. Poe『The Poetic Principle』
(Poetry is the rhythmic creation of beauty)
"시는 유익함이나 기쁨을 주는 일 곧 교훈과 함께 즐거움을 줄 수 있도록 결합하는 일을 목적으로 한다” ―Horace『The Art of Poetry』
(Poets aim at giving either profit or delight, or at combining the giving of pleasure with some useful percepts)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 사무사” ―공자『論語』
(시경에 수록된 삼백 수의 작품들은 한 마디로 말해 시 속의 생각들이 다 바르고 정직하다)
“시는 언어의 건축이다” ―김기림『시론』
“시는 생소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논리성이 약한 구조물이다” ―J. C. Ransom『The New Criticism』
(The poem is a loose logical structure with an irrelevant local texture)
"詩言志 歌永言“ ─『書經; 舜典』
(시는 우리들의 의지(소망)를 말에 담은 것이고 노래는 그 말을 길게 늘여서 표현한 것이다)
“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 ―『詩經;大序』
(시란 뜻(소망)에서 빚어진 것, 마음속에 있을 땐 뜻, 말로 나타내면 시가 된다)
“시는 우주의 생명적 본질이 인간의 감성적 작용을 통하여 표현되는 통일한 具象구상이다” ―조지훈『시의 원리』
<월간 『우리詩』2009. 3월호>
◈임 보 시인
약 력
1962년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62년『現代文學』지를 통해 詩壇에 등단함.
1988년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전 충북대 국문과 교수.
현재 우리詩진흥회 명예이사장, 월간『우리詩』편집인.
논 문
『한국현대시 운율연구』『한국현대산문시 운율연구』『시인의 세 시각』
『한국현대시 압운 가능성에 관한 연구』『단형시고短形詩考』『정지용 산문시 연구』
『서정주 시의 율격적 특성』『「접동새」考』『정호승鄭昊昇시문학 연구』
『육당의「太白山賦」와「太白山의 四時」』『「님의 침묵」의 님의 한 양상에 대하여』
『박목월 초기시의 선적仙的요소』
詩 集
『林步의 詩들 59-74』『山房動動』『木馬日記』『은수달 사냥』『황소의 뿔』
『날아가는 은빛 연못』『겨울, 하늘소의 춤』『구름 위의 다락마을』『운주천불』
『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자연학교』『장닭 설법』『가시연꽃』등이 있음.
저 서 『현대시운율구조론』『엄살의 시학』등이 있음.
출처 : 우리시회(URISI)글쓴이 : 연진 원글보기메모 :'현대시 > 시창작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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