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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킬 수 없는 것들 / 나희덕 (1966- )현대시/한국시 2009. 9. 22. 14:13
삼킬 수 없는 것들 / 나희덕 (1966- )
<야생사과> 중에서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치료와 효과』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 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감사하자. 미선
입속에서 오래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서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 속을
아무에게도 열어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은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음에 감사하자. 희덕.'현대시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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