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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드기 / 신경림 (1935- )현대시/한국시 2009. 12. 13. 16:56
진드기 / 신경림 (1935-)
창비시선 115 <쓰러진 자의 꿈>에서
지금 우리는 너무
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너무 편하게만 살려고 드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먹고 자고 뒹구는 이 자리가
몸까지 뼛속까지 썩고 병들게 하는
시궁창인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짐짓 따스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 자리가
암캐의 겨드랑이나 돼지의
사타구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음습한 그곳에 끼고 박힌 진드기처럼
털과 살갗의 따스함과 부드러움에 길들여져
우리는 그날 그날을 너무 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시큼한 냄새와 떫은 맛에 취해
너무 편하게 살려고만 드는 것은 아닌가,
암캐나 돼지가 타 죽는 날
활활 타는 큰 불길 속에 던져져
함께 타 죽으이라고는 생각도 못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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