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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복음정신과 상반된 본당의 대규모 선교운동아름다운 인생/종교 2010. 3. 24. 08:58
복음정신과 상반된 본당의 대규모 선교운동 -'선교'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야.. ‘복음화’에 대한 바른 이해와 실천 필요 2010년 03월 21일 (일) 16:44:16 이요안 기자 joanness1@naver.com ▲본당에서 살포하고 있는 선교 리플릿 주일미사와 단체회합에 참석하기 위해 소속본당에 갔다. 그런데 본당 건물 입구부터 시작하여 선교 현수막과 포스터가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성당 입구에서는 선교 어깨띠와 리본을 맨 봉사자들이 소책자를 나누어 주었다. 강론시간에는 선교 특강을 했다. 미사 말미에는 선교기도와 선교 구호를 외치었다. 단체 회합에도 선교기도와 구호가 함께 했다. 심지어 인사도 ‘선교 합시다’로 하였다. 소공동체 참석을 독려하는 핸드폰 문자 메시지에도 선교구호가 함께 했다. 본당 안팎에는 선교밖에는 다른 것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본당의 대규모 선교운동은 지난 2월 28일 선교선포식을 시작으로 준비단계(22일간), 실행단계(35일간), 총력단계(22일간), 마무리단계(21일간)로 계획되어 실행되고 있었다. 이번 선교운동은 ‘새 가족 찾기’로 99일 동안 600명을 데려와 6월 6일 예비자 환영식을 갖고 이중 예비자교리를 통해 200명을 입교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이것은 ‘주님, 저희 본당공동체가 새 가족을 하느님께 1인 1명(600명) 봉헌하여 200명 입교하는데 온 마음을 다하고자 하오니’라는 선교기도문 구절에까지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오후에 본당 정책방향 워크숍이 있었다. ‘본당사목 여건 변화로 인한 정책방향의 전 신자 공유와 선교 및 사회복지의 향후 실천사항 토의’가 그 목적이었다. 어기서 ‘본당사목여건 변화’란 이웃에 올해 본당이 신설 되어 20%가 조금 넘는 500여명의 신자가 이적하고 이로 인해 본당 재정수입이 3분의 1이나 감소하는 상황을 일컫고 있었다.
워크숍은 어려워진 본당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교’를 선택해 놓고,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방법으로 많은 사람을 입교시키고 관리하여 본당 재정을 확충, 경제적으로 풍족한 본당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을 찾는 데 그 본래 목적이 있는 것 같았다. 어려워진 본당 재정확충을 위해 신자가 아닌 이들을 대거 입교시켜 이들로부터 교무금이나 헌금을 받아 풍요롭게 본당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분명 예수는 ‘하느님과 돈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6:24,루카16:13)고 했지만 선교를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선교(missio)라는 말은 본래 삼위일체 교리에서 성부에 의한 성자의 파송, 성부와 성자에 의한 성령의 파송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후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건설하는 활동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식민지 국가에 교회가 특사를 파송하며 특사들의 활동을 선교라 부르면서 선교의 의미가 복음화를 위한 세계 정복이라는 군사적 측면으로 변질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이 살해되고 희생되었으며 그 지역 종교와 문화가 파괴되기도 하였다. 이 같은 피선교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정복적이고 일방적 선교관이 오늘날에도 버젓이 그대로 남아 본당에서 이어지고 있다. 교회에 선교와 성장을 우선시하는 교회 중심적 사고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현재 교회에 개신교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대규모 선교운동이 유행처럼 번진지 오래다. 그러나 교회의 성장세는 갈수록 둔화되고 냉담 신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교회가 세속의 황금만능주의에 함몰되어 세상 사람들에게 삶으로 예수의 길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한국천주교회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런데 이 같은 성장은 선교 운동보다는 오히려 교회가 시대적 상황이 요청하는 사회적 요구를 제대로 파악해 민주화를 위한 투신과 사회정의 구현 운동 등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에 의해 이루어진 측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는 '하느님의 보편적인 구원의지'에 따라 신자 유무와 상관없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것이 하느님의 진정한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발맞춰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된 '선교'라는 용어보다 '복음화' 그리고 ‘새 복음화’라는 말이 널리 애용되게 되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52항은 '새 복음화’를 복음을 일방적으로 전하기보다는 '다른 종교나 문화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서 진리를 찾아내고 구원을 위한 인류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려는 노력'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다. 나아가 세상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해 '평화와 연대, 정의와 자유와 같은 보편적 가치들에 기초하는 생명과 사랑의 문화를 창출함으로써 인간생활 전반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타 종교나 비신자를 배려하지 않는 팽창과 양적 성장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는 대규모 선교운동은 복음정신과 어울리지 않는다. 교회 살림의 물질적 풍요만을 추구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요란한 선교운동은 오히려 복음정신과 상반되는 측면이 많다. 따라서 자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리고 이보다는 신자유주의 사상에 함몰되어 갈수록 세속화되어 가는 교회를 먼저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쇄신하는데 그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교회에 시대적 상황이 요청하는 사회적 요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토대로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을 함으로써 스승 예수의 참 제자로 살아가는 모습을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다. 그러면 비 신자들이 강요나 설명이 아니라 이에 감화되어 교회를 스스로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참된 의미의 '선교', ‘새 복음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성경에서도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 등불은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는다. 그렇게 하여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3-16)고 하였다.<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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