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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가에 초대받고 싶다 / 주용일 (1964-)
    현대시/한국시 2009. 5. 24. 13:50

    상가에 초대받고 싶다 / 주용일 (1964-)

    <꽃과 함께 식사>에서


    상가에 가고 싶다는 것은

    내 맘 속 눈물의 수위가 아슬아슬하다는 것이다

    그리운 사람이 많았다는 거고

    세상살이 드센 일도 많이 겪었다는 것이다

    드라이 플라워 같은 얼굴들 앞에서

    슬픔이 위태롭게 만조 수위를 넘지 않고

    잘 견뎌내고 있다는 거다

    얼굴 묻을 가슴 하나 얻지 못해 외로웠다는 것이다

    언제나 울어도 민망하지 않은 곳 상가 제격이어서,

    슬픔이 주검 함께 위로받기 좋은 곳이어서,

    나는 때때로 상가에 초대받고 싶다

    조문 가서 옛날 상주 대신 울었다던

    곡비처럼 눈물 흘릴라치면

    뜻 모를 눈물 앞에 상주 눈 휘둥그레지겠지만

    주검 앞에서의 슬픔 탓할 사람 어디 있으랴

    시원하게 통쾌하게 울고 싶은 날엔

    어디 한세상 곱게 마감하신 이의

    부고 알리는 전화가 기다려지는 것이다

    부고를 장의사처럼 기쁘게 받으며 서둘러

    검은 양복 차려입고 집 나서고 싶은 것이다

    주검이 사무적으로 처리되는 장례식장 말고

    어디 먼 해남이나 통영 바다 가까운

    시골마을 부고라면 더 없이 반가울 것이다

    낯익거나 낯선 영정 앞에서 눈물이 줄기 이뤄

    슬픔을 바다로 다 떠내려 보낸 뒤

    세상으로 돌아와 나는 또 눈물의 만조를 기다릴 것이다

    다시 그리움의 수위가 높아가고

    외로움이 험한 물살 일으키면 만조를 예감하며

    상가에 초대받기 기다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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