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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나뭇잎 뼈 - 강영환 시인현대시/한국시 2022. 8. 1. 16:59
링크 주소: https://www.iwj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2344
나뭇잎 뼈 - 강영환
토하는 하수구는 다 이유가 있다
어느 굽이가 막혔는지 짐작이 안가지만
한 잎 두 잎 빠져들던 나뭇잎 뼈들이
물길을 막고 있어서다
물을 쏟아 내려도 대답없는 하수구
궂은 날에도 정직하던 물길이
작은 비에 물을 삼키지 못하고
토해내 골목을 적신다
올 여름은 독을 비워낸 묵은지가
뭉쳐서 물길을 막고 있다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버려진 아픔이 슬쩍
푸른 농성을 두고 갔다
누구도 욕 퍼붓지 못한다 다 그랬으니까
폭우 속에서 눈치도 없이 날던 새가
비 새는 지붕 아래로 든다
아래로만 가는 물이 원수다
강영환 시집 『달 가는 길』, 《책펴냄열린시》에서
강영환 시인의 시집 『달 가는 길』은 산복도로에 얽힌 삶의 이정표 같은 글들이다. 나뭇잎에도 뼈가 있다는 것은 여름 장마에 막힌 하수구를 보면 알 수 있다. 종종 뉴스를 보면 하수구가 막혀 잠깐 온 비에도 역류되어 온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평상시 맑은 날에는 나뭇잎들이 스며드는 물길을 그리 크게 막을 리 만무하다. 어디 나뭇잎뿐이랴.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도 처음에는 알 수 없는 작은 나뭇잎처럼 쌓인 낙엽이 마음을 가려 놓을 때가 있다. "신경 써주지 않는다고 버려진 아픔이 슬쩍 / 푸른 농성을 두고 갔다" …“아래로만 가는 물이 원수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물이 흘러야 하는 성격에 사람의 삶이 미처 대처하지 못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처럼 결이 곱고 강직한 흐름을 지낸 것들도 드물다. 아래로만 흐르는 그 속성 탓에 자신이 흘러가야 하는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찾아내는 것이 물이다. 물의 흐름이나 세월이 흐르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과학이라는 힘을 빌려 물의 그름을 바꾸어 놓을 수가 있다. 저수 장치며 하수구 터널을 따로 만들어 그 물의 흐름을 바꾸어 낸다. 하늘에서 빗물에 그 높은 절망을 이겨내고 땅에 뛰어내린 것을 보면 나뭇잎 뼈에 그 흐름이 막일 일은 없을 것이다. 가던 길을 돌아가는 일이 있어도 물은 늘 낮은 곳으로 간다. 그 물의 흐름이 산복도로의 한 풍경이었음을 읽어보는 시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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