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벽공무한 - 이성희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2. 12. 7. 12:12

벽공무한(碧空無限) - 이성희 시인

 

가을은

멀어지면 옵니다

멀어지는 것들의 등은

벌써 남빛으로 젖어 있네요

그대 멀어지면서 오세요

 

골목 어귀의 선술집에 등이 켜지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내부에

푸른 별이 켜집니다

저녁이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별의 시간을 삽니다

 

낙엽의 거리에서

오랫동안 찾던 단어 하나를 놓아버린 사람은

별과 별 사이 아득한

허공을 헤매일 것입니다

남빛 시린 허공으로 그대

깊어져서 오세요

 

- 시집 <겨울 산야에서 올리는 기도> (솔, 201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