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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강물을 보며 - 신경림 시인(1935-)현대시/한국시 2024. 1. 9. 23:07
강물을 보며 - 신경림 시인
어떤 물살은 빠르고
어떤 물살은 느리다
또 어떤 물살은 크고
어떤 물살은 작다
어떤 물살은 더 차고
어떤 물살은 덜 차다
어떤 물줄기는 바닥으로만 흐르고
어떤 물줄기는 위로만 흐른다
또 어떤 물줄기는 한복판으로만 흐르는데
어떤 물줄기는 조심조심
갓만 찾아 흐른다
뒷것이 앞것을 지르기도 하고
앞것이 우정 뒤로 처지기도 한다
소리내어 다투기도 하고
어깨와 허리를 치고 때리면서
깔깔대고 웃기도 한다
서로 살과 피 속으로 파고들어가
뒤엉켜 하나가 되기도 하고
다시 갈라져 따로따로 제 길을 가기도 한다
때로 산골짝을 흘러온 맑은 냇물을 받아
스스로 큰물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 사이을 헤집고 온 더러운 물을
동무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다리 밑도 기나고 쇠전 싸전도 지난다
산과 들판을 지나고
바위와 돌틈을 어렵사리 돌기도 한다
그러면서 모두 바다로 간다
사람이 사는 일도 이와 같으니
강물을 보면 안다
온갖 목소리 온갖 이야기기 온갖 노래
온갖 생각 온갖 다툼 온갖 옳고 그름
우리들의 온갖 삼 온갖 갈등
모두 끌어안고 바다로 가는
깊고 넓은 그코 긴 강물을 보면 안다
-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신경림 시집 <가난한 사랑노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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