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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허수경에 대하여현대시/한국시 2009. 8. 12. 19:13
불우한 악기
허수경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
초라한 남녀는
술 취해 비 맞고 섰구나
여자가 남자 팔에 기대 노래하는데
비에 젖은 세간의 노래여
모든 악기는 자신의 불우를 다해
노래하는 것
이곳에서 차를 타면
일금 이천 원으로 당도할 수 있는 왕릉은 있다네
왕릉 어느 한 켠에 그래, 저 초라를 벗은
젖은 알몸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도록 엉겨붙어 무너지다가
문득 불쌍한 눈으로 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
굴곡진 몸의 능선이 마음의 능선이 되어
왕릉 너머 어디 먼데를 먼저 가서
그림처럼 앉아 있지 않겠는가
결국 악기여
모든 노래하는 것들은 불우하고
또 좀 불우해서
불우의 지복을 누릴 터
끝내 희망은 먼 새처럼 꾸벅이며
어디 먼데를 저 먼저 가고 있구나
(<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1. 불광동
80년대 현재, 허수경은 몸과 마음이 고단하고 신산할 때마다 불광동 시외버스터미널에 간다. 悲情의 城市 서울에도 슬픔을 가라앉힐 모퉁이는 있는 법. 그곳엔 구겨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도 도심을 벗게 해주는 버스가 줄줄이 서있다. 문산, 법원, 광탄, 적성, 의정부... 어디를 가도 낮은 구릉과 편편한 들녘이 시야를 푸르게 하지만 한적하기로는 왕릉만한 곳이 없다. 경기 서북에 산재한 장릉, 서삼릉, 서오릉, 온릉, 파주삼릉(공순영릉).... 모두 사위가 고즈넉하고 개활하다. 그 중 능역이 깊고 주변 숲이 은밀한 곳으로는 서오릉이 제격이다. 붉은 속살을 드러낸 적송과 수백 년 묵은 아름드리 참나무와 느티나무가 숲 그늘을 드리운 곳, 그 아래 앉아 농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은 이가 있다면 그를 불광동으로 불러내도 좋다. 그리하여 불광수퍼에서 소주 한 병과 새우깡 한 봉지를 사서 원당행 버스에 올라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면 설핏 오수에 잠길 새도 없이 서오릉에 닿는다.
왕릉 한 켠에서 초라를 벗은 알몸들이 뒤엉켜 마음의 능선을 이룰 때, 불우에서 희망에로의 변주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2. 진주
세상이 어지럽던 80년대 중반, 64년생 83학번 허수경도 그 들끓던 시국을 비껴갈 수 없었다. 허수경이 그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며 겪었던 좌절과 아픔은 그녀가 24살에 출간한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 "얼어붙은 하늘에 꽉 박혀 진저리치고 있는 지리산 감나무 ”(‘지리산 감나무’)처럼 알알이 박혀 있다. 그 시집에 실린, 앳되고 풋내 나는 단발머리 여대생이 쓴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그러나 가장 빛나는 시, ‘폐병쟁이 내 사내’는 이토록 가슴 저리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 밤 어두운 길에서 만났더라면 지레 도망질이라도 쳤을 터이지만
눈매만은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아 내라도 턱하니 피기침 늑막에 차오르는 물 거두어 주고 싶었네
산가시내 되어 독오른 뱀을 잡고
백정집 칼잽이 되어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이고 싶었네저 미친 듯 타오르는 눈빛을 재워 선한 물같이 맛깔 데인 잎차같이 눕히고 싶었네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었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내 할미 어미가 대처에서 돌아온 지친 남정들 머리맡 지킬 때 허벅살 선지피라도 다투어 먹인 것처럼
어디 내 사내뿐이랴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중, ‘폐병쟁이 내 사내’ 전문, 실천문학사, 1988)
허수경의 말처럼 어디 허수경 개인의 사내뿐이겠는가. 폐병쟁이 사내란 어쩌면 유난히 그 시대를 앓던 모든 청춘의 자화상일 수도 있다. 진주 경상대학 시절, 그녀 또한 학습하고 행동하는 간난신고의 길거리 여대생 중 하나였다. 그 녀는 “그리 모질게 매질을 당하고도 솟증이 돋아 입탐을 하네.......제아무리 매질 오질토록 닥쳐 봐라 내 입맛 하나 온전히 다칠 수 있으랴...”(‘사식을 먹으며’)나 “우리는 자연법을 만들고 저들이 실정법을 만들었습니다”(‘항소 이유서’)라는 시어로 남는 격한 시절을 보냈다.
허수경이 ‘내 사내’의 “미친 듯 타오르는 유월 숲속 같은” 눈매를 선한 물같이 가라앉혔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혼신을 다했던 그녀의 사랑은 순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허수경이 대학을 졸업한 후 “무작정 상경한 울음의 도시”(‘표정2’) 서울에서 만나 가장 절친하게 지냈던 문우 신경숙의 기억에 따르면 “수경의 덕목은 정을 주면 이 세상에 너와 나 둘뿐이라는 듯이 대상에게 성실하다는 것이다.”(허수경 시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발문 중에서). 허수경이 사람을 좋아하는 방식은 전적인 것이었다. 여릴수록 상처는 깊은 법. 대상에게 성실했던 어린 허수경의 마음은 결국 “이 세상 정들 것 없어 병에 정”들어 “버려진 마음들이 켜놓은 세상의 등불”처럼 “아프고 대책없”(이상 ‘정든병’)었다. 하지만 그토록 절실하게 매달렸던 진실이란 것도 단지 한 때의 生이었을 뿐 영속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허수경의 속내를 잘 알았을 신경숙의 소설 <성문 앞 보리수>을 펼치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경아, 나 이제 물어볼래. 그래야 나도 너에게 무슨 얘기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아. 너 십 년 전에 왜 갑자기 이곳으로 온거야? S의 느닷없는 단호한 질문에 경이 주춤했다. 길을 잃고 있는 중이어서 나눌 대화는 아니었다. 경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모든 게 공허했어"라는 짤막한 말 한 마디였을 뿐이다.”.
허수경이 앓은 열병의 근원이 폐병쟁이 사내인지 암울했던 80년대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분명한 것은 모든 진실은 부풀려진 풍선처럼 공허하며 영원이란 것도 기실 한낮의 꿈같은 허상일 뿐이다. 그녀의 심사는 진주 남강의 해저물녘처럼 노을져 갔고, 세상을 뜨는 새들처럼, 후두둑 피었다 지는 밤꽃처럼 속절없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허수경은 대책 없는 기다림을 접고 지겹도록 정이 든 고향을 떠나야만 했다.
기다림이사 천년 같제 날이 저물셰라 강바람 눈에 그리메지며 귓불 불콰하게 망경산 오르면 잇몸 드러내고 휘모리로 감겨가는 물결아 지겹도록 정이 든 고향 찾아 올 이 없는 고향
문디 같아 반푼이 같아서 기다림으로 너른 강에 불씨 재우는 남녘 가시나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중, ‘진주 저물녘’ 부분)
3. 서울
졸업반이던 1986년 말, 습작시들을 들고 상경한 허수경은 <실천문학> 복간호 특별기획 현장시 부분을 통해 ‘땡볕’을 발표한다. 이어 진주를 배경으로 현대사의 질곡을 노래한 <슬픔만한 거름이 있으랴>를 출간하고, 그 4년 뒤, 상처와 치유의 서정이 가득한 두 번째 시집 <혼자 가는 먼 집>을 낸다. 신경숙의 말에 따르면 “소설가들도 수경의 시를 줄줄 외우고” 다닐 정도로 신선하고 매혹적인 시들이 꽉 들어찬 이 시집엔 시퍼렇게 날이 섰던 첫 시집에 비해 진정되고 다독여진 마음자리가 양지바른 산기슭을 덥히는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투사되어 있다. 더불어 어두웠던 한 시절에서의 몸부림은 “무감동의 희망”으로 추억되고, “사카린같이 스며들던 상처”(‘봄날은 간다’)도 “無望 속으로 환하게”(‘백수광부’) 자취도 없이 스러져 가고 있었다.
757 좌석버스, 세간의 바퀴가 나를 그곳까지 데려다주었다 딴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내 발로 그곳까지 갔을 뿐
라면 반 개의 저녁이면 나는 얼큰하게 먹어치운 저녁 기운에 이런 노랠 했었다네 We shall overcome
버리고 떠나온 한 비럭질의 생애가 밀물지듯 서늘해지는 세월의 저녁 We shall overcome 우리 이기리라 넘어가리라 건설하리라 또 다른생애에의 희망 이 무감동의 희망
그러나 세간의 바퀴여
잠깐, 나는 단 한번도 내 뒷모습을 용서하지 않았으나 내 그림자는 발목을 잡고 한번도 나를 놓아두지 않았도다 그리고
길 아닌 길 건설의 무감동이 나를 무너지게 했던 그 길에, 가끔 깃을 털고 때까치가 날고 나, 미루나무에 기대어 마을을 내려다보면 하나,둘, 불켜진 창마다 가슴은 언제나 설레어 이런 날 종일 누군가를 기다렸으나
온전한 벗도 온전한 연인도 다 제 갈 길을 갈 뿐
나, 마음의 古老를 좇아 서둘러 떠났을 때 보았다
무수한 생이 끝나고 또 시작하는 옛사랑 자취 끊긴 길
그 길이 모오든 시작을 주관하고 마침내 마감마저 사해주는 것을
눈에서 지워진 그 길 원당 가는 길이었던
내 삶의 무너지는, 자취 없는 길
(<혼자 가는 먼 집> 중, ‘원당 가는 길’ 전문)
원당 가는 길, 그 길목에 서오릉과 서삼릉이 있다. 허수경이 서오릉의 어느 장명등 앞에 서서 멀리 원당을 비껴 흐르는 창릉천을 내려다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고향 진주의 망경산에서 굽어보면 진주처럼 빛나던 남강의 유장한 모습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지만, 한 때 “우리 이기리라 넘어가리라” 외쳐댔던 또 다른 생애에의 희망이 무감동의 희망이었음을 깨닫게 해 주기엔 왕릉만한 곳도 없다. 무덤이란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안부를 묻"(‘한식’)는 곳이듯, 시야가 탁 트인 왕릉 한 켠에 서면 모든 시제가 현재로 수렴된다. 과거나 미래라는 행성은 현재라는 항성을 중심으로 공전할 뿐이다.
뒷날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하러 독일로 간 허수경이 터키의 발굴 현장에서 쓴 고고학기행 에세이에 이런 대목이 있다.
“무덤을 방문하는 자에게 무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무덤을 방문하는 자들이 무덤을 앞에 두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를 들여다보는 자의 내면에는 미래를 점치고 싶은 내면이 있으며 미래를 점치려는 내면은 현재의 문제를 분석하려는 내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현재인가? 그 시간, 현재라는 시간만을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현재라는 인간의 시간만이 나와 너를 이렇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허수경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현대문학, 2005).
나와 너, 우리 모두는 현재라는 불연속면에 서있다. 소중히 여기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감추거나 드러내는 것, 뜨겁거나 차가운 것... 가족이든 연인이든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두 기층의 단면에 선 채, 충돌과 화해를 반복하면서 서로의 현재를 맹렬히 이해하려고 한다.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의 일들이 나를 울게”하지만 “울 수 있었던 날들의 따뜻함”(‘울고 있는 가수’)이 햇살처럼 번지기도 한다. 그렇게 한랭과 온난의 접면에 선 서울 생활 6년은 허수경에게 불안과 안락을 교차시켰지만 현재에 우뚝 서서 생의 누추함을 껴안고 과거와 화해하는 힘을 실어주었다. 그리하여 “마음끼리 살 섞는 방법”(‘마치 꿈꾸는 것처럼’)을 꿈꿔왔던 허수경의 마음속에선 그 사내 혹은, 그 시대가 “청년이 되어 늙은 마음의 애달픈 물음 속으로 들어와 황혼의 손으로 악수를 청하”(아래의 시 중에서)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내가 가장 아름답게 여기는 허수경의 詩 ‘청년과 함께 이 저녁’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가지에 깃드는 이 저녁
고요한 색시 같은 잎새는 바람이 몸이 됩니다
살금살금, 바람이 짚어내는 저 잎맥도
시간을 견뎌내느라 한 잎새에 여러 그늘을 만드는데
그러나 여러 그늘이 다시 한 잎새 되어
저녁의 그물 위로 순하게 몸을 주네요
나무 아래 멈춰서서 바라보면 어느새 제 속의 그대는
청년이 되어 늙은 마음의 애달픈 물음 속으로
들어와 황혼의 손으로 악수를 청하는데요
한 사람이 한 사랑을 스칠 때
한 사랑이 또, 한 사람을 흔들고 갈 때
터진 곳 꿰맨 자리가 아무리 순해도 속으로
상처는 해마다 겉잎과 속잎을 번갈아내며
울울한 나무 그늘이 될 만큼
깊이 아팠는데요
그러나 그럴 연해서 서로에게 기대면서 견디어내면서 둘 사이의 고요로만 수수로울 수는 없는 것을, 한 떨림으로 한세월 버티어내고 버티어낸 한세월이 무장무장 큰 떨림으로 저녁을 부려놓고 갈 때 멀리 집 잃은 개의 짖는 소리조차 마음의 집 뒤란에 머위잎을 자라게 하거늘 나 또한
애처로운 저 개를 데리고 한때의 저녁 속으로 당신을 남겨두고 그대, 내 늙음 속으로 슬픈 악수를 청하던 그때를 남겨두고 사라지려 합니다,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슬금슬금 산책이 오래 아프게 할 이 저녁
(<혼자 가는 먼 집>중, ‘청년과 함께 이 저녁’ 전문)
4. 독일
“떠나는 일은 불편하다. 새 거처를 마련하는 일은 불편하다. 나는 유목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런데 무엇이 나를 유목하게 하는가. 사는 것의 이런 저런 이유로? .....(중략).....사막을 건너는 사람들이 낙타 등에 물주머니를 싣고 가듯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나의 가방 안에도 물병이 들어 있다. 철근으로 만든 낙타를 타고, 마른 사막을 지나듯 낯선 풍경을 지나며, 새로운 정주지(定住地)를 찾아.” (허수경 장편소설, <모래도시> 부분에서 발췌)
<혼자 가는 먼 집> 출간으로 시인으로서 절정에 오르던 1992년, 허수경은 선사고고학을 공부하겠다며 돌연 독일로 떠났다. 그 후 17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그녀는 2005년 현재 뮌스터 대학 고대 동방문헌학 박사과정에 있다. 그 동안 접시도 닦고 조교 일도 하면서 터키나 이라크 등 고고학 발굴 현장을 누볐고, 그 결과물로 반전(反戰) 시집이라 불러도 좋을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창작과비평사, 2001)와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문학과지성사, 2005)을 펴냈으니 허수경의 인생행로는 그녀의 말처럼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진주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독일로.... 떠난다는 것, 떠나서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 허수경에게 그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 영혼은 오래 되었으나> 맨 뒷장 ‘시인의 말’ 속에 그녀의 대답이 들어있다. “독일 체류 기간 동안 나는 이제 더 이상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하지 않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내가 나를,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떠난다는 것은 대체 어디로부터의 떠남인가? 오늘의 ‘저곳’은 내일의 ‘이곳’이 될 뿐이다. 돌아올 곳, 돌아갈 곳의 구분이 무의미하다. 우리가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현재를 살아가는 곳, 그래서 내가 나를, 우리를 들여다보는 곳, 바람처럼 스치는 우리네 삶에는 현재라는 이곳만이 있을 뿐이다. 서해를 지나온 서풍에서 비린 바다냄새를 맡을 수는 있지만 그 안에 서해가 담겨져 있지는 않다. 허수경의 사내, 허수경의 시대도 그러하다. 한반도를 스쳐간 독일의 허수경에게 과거란 그 이미지만 남아있을 뿐 현재로서의 실체는 없다. 그녀의 오래된 영혼이 불러내는 추억도 그러하다.
고향 언저리에서 나지 않는 열매들이 추억을 채우네
이국의 푸성귀들이 내 살을 어루네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았으며
입술은 사랑의 노래로 헤어졌네
과거는 소멸되지 않았으나 우리는 소멸했네
오 오 나는 추억을 수치처럼 버리네
내 추억에서 나는 공중변소 냄새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중, ‘그날의 사랑은 뜻대로 되지 않았네’ 전문)
그러나, ‘현재, 이곳’에 충실하며 추억을 수치처럼 버리고자 했던 허수경도 끝내는 발목을 잡아채는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작열하는 중동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옛 왕들의 무덤을 파헤치고 각 층위에 담긴 시간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과거의 상처가 남긴 유물들이 가슴 속에서 하나 둘 새롭게 발굴된다. 그리하여 시를 쓰지 않을 수 없고 시를 쓰기 위한 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다.
그때 나 갓 스무 살
그 거리, 혼불이 든 영혼의 거리
그대를 기다렸네
내 옆에 보자기를 풀어 빗이나 실이나 단추를 팔던
아낙, 그때는 80년대
독재자의 얼굴로 돌이 날아가고
흰옷을 입은 여자들이 한 거리에서 춤을 추고
그대가 오던 길이 막히고
아낙이 젖 먹던 아이의 얼굴을 시커먼 손으로 훔쳐주며
고개를 숙일 때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며 시계를 바라보며
오후를 넘긴 해가 멀리 지구의 저 너머로 걸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그때 내 영혼에 구멍이 뚫리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대여, 이 속수무책은 그때 그 도시를 다스리던 독재자의 선물인가,
내가 그대가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을 거라는 느낌,
내 일생의 어떤 순간도 더 이상 기다림으로 허비하지 않겠다고,
혼자 중얼거리며 기다림을 거부하며,
어둑한 그 거리에서
아낙이 단 하나의 빗도 팔지 못하던 그 거리에서,
어떤 독재보다 더 지독한 속수무책은
내 영혼의 구석구석까지 검열했고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을 믿지 않는 것, 그때,
그대는 끝내 그곳에 오지 않고
지금 나는 사십이 되어 비 오는 이방의 어둑한 기차역에서서
오지 않는 기차를 기다리는데,
오십 분 연착된다던 기차는 두 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고
펑크 계집아이 하나가 맥주 하나 마실 돈 달라고 손 내미는데
지금 이 속수무책도 그때 그 독재자의 선물인가,
나, 그때 지금까지 당도하지 않는
그대를 기다려야 했는가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중, ‘기차역’ 전문)
그가 오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아니라 허수경 자신이 그를 기다리지 않을 거라는 느낌, 기다림을 거부했던 80년대 시위 현장에서의 그 예감은 끝내 그가 당도하지 않음으로 해서 완결되었다. 하지만, “이방의 어둑한 기차역” 플랫폼에서조차, 80년대 한반도의 그 거리, 혼불이 들었던 영혼의 거리로부터 혹은, 갓 스무 살에 만나 기다림과 체념을 알게 했던 폐병쟁이 사내로부터 타전된 소리가 귀청을 울린다. 허수경의 詩作 노트는 그 발신음에 속수무책이다. 그리하여 언제든 돋아날 그 어떤 간절함으로 인해 새로운 시가 완창될 것이다. 그녀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 그것이 불우가 희망으로 변주되는 유일한 길이다.* 2009. 5. 9 구하
출처 : 살아남은 자의 슬픔글쓴이 : right to dream 원글보기메모 :'현대시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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