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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시란 인간의 본질이며 정체성이다

밝은하늘孤舟獨釣 2009. 8. 17. 15:50

시란 인간의 본질이며 정체성이다

서 덕 근(시인)

 

매일 아침 면도를 한다.

간밤에 자라난 언어들을 깎는다.

시란 나의 언어를 다만 정리하고 깎는 작업에 다름아닐런지.

그렇잖으면 보기 흉하니까.

 

어둠의 어깨를 관통하는 밤열차 울음이

어머니 주무시던 웃목마냥 시린

이마에 매달립니다

―「영산강」('94년 신춘문예 등단시)중에서

 

시는 꿈꾸는 연어알 같다.

영혼의 상류를 따라가는 시인의 발자취는 발자취에 지워진다.

또한 시는 직관이자 직감이다.

당대의 부조리와 불합리에 가장 민감한 성감대이다.

 

파랑주의보의 연애를 건너온

갈매기 한 마리

―「봄 답신」중에서

 

시는 '신(神)'이 되고자 끊임없이 오르려 하는 의지.

'신'이 잠시 'ㄴ'과 떨어져 있는 상태로 된.

여기서 '신'의 의미는 '영혼의 세계'이자 '4차원 이상의 신명계'이며 'ㄴ'의 의미는 '육체(물질)의 세계', '3차원 세계'이다.

말하자면 시란 정신에 육체성을 부여받은 예술이다.

우리가 언어를 갈고 닦고 다듬는 것도 일종의 육체적 수행(고행)과도 같다.

결국 시를 쓴다는 건 육체를 수련시키며 동시에 정신을 수련시키는 과정인 셈이다.

시적 언어는 어느 정도의 정신적 완성물이므로.

성경의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있었다' 라는 구절을 생각한다.

 

시는 말의 절(言+寺)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말(음성언어)을 글(문자언어)로 구현한 것이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언어(말,글)로 지은 성전이며 '경(經)'이다.

시가 일종의 '영(靈)적 주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시 안에 있는 '에스프리'가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런지.

 

시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찬사, 궁극적으로 '절대자'를 향한 향연.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이.

'말씀'은 하나님과 동격이므로 6일만에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한다는 구절처럼 언어로 '신세계'를 구현하는 선지자인 시인은 메세지인 '시'를 남기려 한다.

그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그러나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어를 만들기 위해---.

 

지금은 안개와 교전 중이다.

지독한 그리움이다.

깊은 유곡을 빗소리에 갇혀 기다려 본 이는 안다.

모든 빗소리가 심장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밤새

그대를 잊어야 하는

저 빗소리는 폭포가 되어

 

나를 그대 눈물로

흐르게 하리

―「깊은 슬픔」

 

문득, 소설 「큰바위 얼굴」이 떠오른다.

시란 인간의 본질이며 정체성이다.

구도자처럼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존재.

내겐 그것은 시의 얼굴, 하나님의 얼굴이다.

                                (월간『牛耳詩』제210호)

출처 : 석향/김경훈
글쓴이 : 석향김경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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