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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수께끼 / 허수경 (1964-)
    현대시/한국시 2009. 8. 27. 14:33

    수수께끼  / 허수경 (1964-)


    극장을 나와 우리는 밥집으로 갔네

    고개를 숙이고 메이는 목으로 밥을 넘겼네

    밥집을 나와 우리는 걸었네

    서점은 다 문을 닫았고 맥줏집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들어갈 수 없었네


    안녕, 이제 우리 헤어져

    바람처럼 그렇게 없어지자

    먼 곳에서 누군가가 북극곰을 도살하고 있는 것 같아.


    차비 있어?

    차비는 없었지

    이별 있어?

    이별만 있었지


    나는 그 후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다시 만나지 못했네

    사랑했던 순간들의 영화와 밥은 기억나는데

    그 얼굴은 봄 무우순이 잊어버린 눈물처럼

    기억나지 않았네


    얼음의 벽 속으로 들어와 기억이 집을 짓기 전에 얼른 지워버렸지

    뒷모습이 기억나면 얼른 눈 위로 떨어지던 빛처럼 잠을 청했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당신이 만년 동안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들여다보고 있었네

    내가 만년 동안 당신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붙들고 있었네

    먼 여행 도중에 죽을 수도 있을 거야

    나와 당신은 어린 꽃을 단 눈먼 동백처럼 중얼거렸네


    노점에 나와 있던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는 세월이었네

    폐지를 팔던 노인이 리어카를 끌고 지하도를 건너가고 있는 세월이었네

    왜 그때 헤어졌지, 라고 우리는 만년 동안 물었던 것 같네

    아직 실감나지 않는 이별이었으나

    이별은 이미 만년 전이었어


    그때마다 별을 생각했네

    그때마다 아침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다리 밑에 사는 거지를 생각했네

    수수께끼였어,

    당신이라는 수수께끼, 그 살[肉] 밑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잊혀진 대륙들은

    회빛 산맥을 어린 안개처럼 안고 잠을 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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