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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 조향미(1961-)현대시/한국시 2009. 9. 28. 14:01
몸 / 조향미 (1961-)
-실천문학 시집 <그 나무가 나에게 팔을 벌렸다>에서-
시답잖은 인생살이 그나마 고마운 것 중 하나는
마음을 생짜로 노천에 내놓진 않아도 된다는 것
몸이라는 황송한 제 집이 있어서
벌거숭이 마음 담아둘 수 있다는 것이다
예고 없이 몰아붙이는 폭풍에 찢겨
거둘 수도 없는 깃발처럼 너덜너덜한 마음
밤낮 기워대도 덕지덕지 어리석음뿐인 마음
그대로 훤히 비친다면 누군들 태연히 길을 나서리
모르는 척 그 누추한 마음 덮어주는
몸은 너그럽다
여름날 칡넝쿨처럼 뻗치던 열망의 끝자락마다
마중이라도 나온 듯 기다리는 건 번번이 바위절벽
와르르 무너지는 천 근의 마음 그래도 추슬러지고
안간힘으로 일어서는 건 두 다리다
치미는 울음 꾹꾹 눌러주는 건 목젖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쌓고 허무는 방죽 같은
퍼내고 퍼내도 다시 고이는 웅덩이 같은
허망하고도 질긴 마음 바람인 듯 끌어안아
삼천대천 무한 겁 시공 속에 한 그루 나무로
든든히 뿌리내렸다 미련 없이 소멸하는
몸은 듬직하다
인터넷 검색하다가 어느 카페인지 블러그인지에서 봤는데 좋다싶어 여기 옮겨본다.
우리 몸과 그 고마움에 대해 성찰케 하는 글이다.
이처럼 마음을 담아주는 그릇인 몸은 정말 소중한 것이다.
이 몸을 나는 과연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지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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