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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다는 것은 / 안차애현대시/한국시 2010. 3. 3. 22:42
길들여진다는 것은 / 안차애
날오이 한 개 송송 썰어 주전자에 담고
이슬 소주 한 병을 붓는다
강하고 센 소주 기운이
청오이 서늘한 담향에 삼투되기를 즐겁게 기다린다
가시를 발라내고 얌전한 안주가 된 광어처럼
지금 소주도 가시를 발라내고 있는 것이다
역한 냄새의 가시, 오래 성질 부리는 숙취의 가시…
청오이 맑은 날에 거친 가시들을 발라내고 나면
나긋나긋하고 빛 고운 새 술이 흰 잔 가득 넘칠 것이다
문득, 센 것 역한 것들 훌훌 털어내고 가벼워진 소주 말고
소주의 성질을 얌전히 받아낸
주전자 속 오이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나와 같이 사는 가족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급하고 마른 기질의 불가시를 묵묵하게 받아낸
식구들 가슴 속 안부가 새삼 아프게 궁금하다'현대시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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