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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바다에서 / 박재삼(1933-)현대시/한국시 2010. 5. 7. 14:29
밤바다에서 / 박재삼 (1933-)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質定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天下에 많은 할 말이, 天上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출처: 한국대표시인 100인선집 52, <울음이 타는 가을江>, 미래사, 1996.
이 박재삼 시인님의 시집을 보기 전에 이름만 봤었는데 그래서 전혀 이분에 대해 알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막상 이분의 시집을 보다보니 이 분의 글이 너무 좋아졌다. 표현이 과하지만, 이를테면 동성애(?)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너무 글이 아름답고 좋더라... 내가 본 여러 시집 중에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지는 시인이 되었다.
남자가 남자에게 맹목적으로도 좋아질 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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