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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누가? 왜? 성명서를 막는가

밝은하늘孤舟獨釣 2010. 10. 27. 18:00

누가? 왜? 성명서를 막는가
[교회는 누구인가-김유철]
2010년 10월 26일 (화) 16:20:51 김유철 sk0770@hanmail.net

그대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가?

일본 식민지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눈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세 부류일 것이다. 첫째는 도둑이 제 발 저려하는 친일언저리와 그 후손들일 것이고, 둘째는 그들을 바탕으로 현재의 권력이나 재산을 축척한 부류이며, 셋째는 지나간 옛날(?) 이야기가 시시껄렁하게 들리는 무관심자들일 것이다.

아무튼 올해는 한국강제병합, 이른바 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다. 그런 해를 맞아 여기저기서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하고 몇 가지 행사를 하기도 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치욕적인 일이 있다면 다시는 그런 일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런 일을 다양하게 해석하고 관계되는 자들의 사죄와 함께 용서를 병행하며 함께 민족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조약체결 당초부터 무효

올해 5월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이 각 100여 명씩 모여 ‘한국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서명자 안에는 일본천주교 사제(후카미 마사카쓰 신부)가 들어있었지만 한국 천주교 사제는 없었다. 이후 이 성명서에 동의한 서명자는 1000명을 훌쩍 넘었다. 무엇보다 성명서는 <병합조약>이란 것이 ‘조약체결 당초부터 무효(null and void)' 임을 확인했다고 언론에서는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그 이후 8월에는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가 ‘식민주의 청산과 평화실현을 위한 한일시민공동선언’을 발표했다. 이 위원회에는 한국 81개, 일본 37개의 시민단체가 참여했다.

흔히 말하는 양국의 ‘불행했던 시절’에 대하여 몇몇 개인들에 대한 잘못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침략과 탐욕에 의한 식민지화 과정이 강제와 불법임을 천명하며, 일본정부에 대해서는 식민지배로 인하여 현재까지도 청산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해결과 올바른 역사교육을 촉구하는 것이 성명서들의 공통된 주제였다.

해석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

일본의 일부 지식인이나 시민단체는 차치한다고 하더라도 국치 100년을 보내는 한국내의 논의는 더욱 활발해져야 하며 각계가 바라본 국치에 대한 반성과 함께 다짐은 분명히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다. 일부 아시아 국가들이 받은 수백 년의 식민지시절에 비한다면 36년의 강점기가 짧은 편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그 대가로 반도의 허리가 요절나 아직도 분단의 세월이 이어져 오고 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해석되지 못한 역사는 반복된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학설이기 이전에 많은 나라들의 체험이기도 하다. 일본에 의한 국치가 민족에게 해석되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역사 안에서의 국치는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역사학자들의 몫이 아닌 구성원 모두의 해석이며 일반 민중이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앞선 자들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종교계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다. 전 국민의 대다수가 종교인인 나라다. 어느 종교에 소속되어 있던지 말이다.

성명서를 누가? 왜? 막았는가

천주교회 안에서도 일본강점시절 교회의 친일행위와 관련된 논란은 2010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명확한 자세로 고백하고 잘못된 일에 대한 용서를 민족과 하느님 앞에 청하지 않았다. 교회는 2000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을 맞아 한국 주교회의 명의로 발표한 <쇄신과 화해>의 2항에서 한 말이 현재까지 공식 입장 전부였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주교회의는 그때나 지금이나 친일의 수많은 잘못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행동을 “안타깝게” 생각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올해 8월 29일 강제병합 100년에 즈음하여 주교회의 명의로 성명서를 준비했었다. 그 성명서에는 단순한 “안타까움”을 넘어 그 당시 <병합조약> 합법성에 천주교회 지도자들이 동의했으며 ‘병합’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침략에 저항한 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한 것을 비롯한 “고백”과 수많은 잘못된 자기합리화에 대하여 “깊은 반성”을 포함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결국 그 성명서는 발표되지 못한 채 보류가 아닌 폐기되었다. 누가? 누가? 왜? 왜?

아직 경술국치 100년은 끝나지 않았다

천주교회는 입만 열면 ‘평화’를 말하는 조직이다. 그 평화가 교회 안에서의 평화가 아니라면 한반도에서의 평화 그리고 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세상의 평화에 대한 구체적인 투신을 다짐해야 한다. 오늘 민족의 숨통을 누르고 있는 남북분단과 또 다시 다가온 군사적 대립 앞에 천주교회가 말하는 평화를 다시 생각해야한다. 아직도 올해가 다 가려면 두 달이나 남았다. “깊은 반성”과 “고백”이 담긴 성명서가 누군가에 의하여 폐기되었다면 이제라도 다시 만들어 한국 주교회의 이름으로 말해야 할 것이다. “하느님, 우리는 죄인입니다.”라고 말이다.

천주교회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김수환 추기경이 2004년 안중근 추모미사에서 말한 강론을 다시 들으며 글을 마무리 한다. ‘옹기’라는 호를 지닌 그 분에게 배우려면 이런 면을 현재의 교회 지도자들은 배우시라. 두려워 말고 말이다.

“일제 당시 제도교회가 올바르게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했다고 보기 힘든, 한국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친일적인 행위가 있었음을 한국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서 마음 아파합니다. …… 그 분의 지체인 지역교회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역사를 통해 그 과오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싫던 좋던 지고 온 과거의 짐을 청산하는 자리가 앞으로도 더 많이 주어져 우리 모두가 흔쾌히 참회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유철 /시인.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지부장.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교회비평집 <깨물지 못한 혀>(2008 우리신학연구소). 포토포엠에세이 <그림자숨소리>(2009 리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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