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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자기 자신을 속이는 잘못은 깊다

밝은하늘孤舟獨釣 2010. 12. 11. 18:15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잘못은 깊다
[기고-서정홍] "교회는 이미 사업체가 되었고, 성직자는 월급쟁이"
2010년 12월 10일 (금) 16:43:22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webmaster@nahnews.net

주님께서 “지금, 너희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한 번쯤 깊이 생각해 보았느냐?” 라고 물으면 무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주님께 이런 질문을 하고 싶겠지요. “주님,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바쁜데 그런 골치 아픈 것을 생각할 겨를이 어디 있다고 물으십니까?”

그렇습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신자들은 신자들 나름대로 모두 바쁘게 살아갑니다. 같은 공동체 속에서도 생각이 다른 것은 다르다고 말하지 않고 틀렸다고 말합니다. 다르다는 것은 서로 존중해야 하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틀린 것은 존중할 수도 없고 도울 수도 없습니다. 시험 문제처럼 틀린 것은 다시 고칠 수가 없으니까요.

저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생명농업’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보잘것없는 농부입니다. 올해 쉰세 살인데 우리 마을에서 제가 가장 젊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청년회장도 하고 혼자서 청년회원도 합니다. 지금부터 산골 마을 청년회장(아무도 불러줄 사람도 없지만)의 눈으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본 대로 느낀 대로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웃 마을에는 귀농한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는 병든 하늘과 땅과 물과 모든 생명을 살려보려고 화학농약과 화학비료 더구나 비닐과 기계까지 쓰지 않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하느님이 손수 지으신 자연을 사람이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그래서 한해 돈벌이가 이삼백만  원도 안 되지만 스스로 외롭고 힘든 ‘생명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이런 젊은이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히려 제가 부끄러워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십 년을 먼저 태어난 저보다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대로 경제 성장이라는 ‘괴물’에 홀려 가다보면, 사람이고 자연이고 모두 두 번 다시 올라올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것을 바보가 아니면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요.

   
▲ 사진/한상봉 기자

우리는 지금 무척이나 어지럽고 불안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진정한 행복이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라고 묻고 싶을 만큼 말입니다. 그게 모두 사람이 흙(자연)을 떠나 살게 되면서부터 생긴 일입니다. 사람이 흙을 떠나 살게 되면 스스로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중국 명대의 대학자이자 정치가인 뤼신우는 “도둑질을 하면 남을 속일 뿐이지만 양심을 거스르는 일로 남을 속이게 되면 비록 상대가 눈치를 채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신은 도둑이 되는 것이다. 말만 그럴듯하고 행동이 일치되지 않으면 그 또한 도둑이 되는 셈이다. 세상을 속여서 물건이나 명성을 훔치는 잘못은 크다. 그러나 마음을 속여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잘못은 깊다.” 라고 했습니다.

제가 도시에서 살아온 사십오 년을 뒤돌아보니 ‘마음을 속여서 자기 자신을 속이는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왔구나 싶습니다. 온갖 편리함을 다 누리면서 아이들 앞에서 주둥이만 살아서, 생명이니 환경이니 떠벌이고 다녔지요.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농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정도나 수준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진보(進步)라 합니다. 또는 ‘전에 있던 것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좇는 것’을 진보라 합니다.

우리가 여태 걸어왔던 길은 결코 올바른 길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가, 가장 좋은 교육은 후회를 가르치는 것이라 하더군요. 그러니 우리가 여태 잘못 살아왔다는 걸 먼저 인정해야 정도나 수준이 점점 나아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돌아갈 때는 돌아가는 것이 진보’입니다. 지금은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버리고 떠난 흙(자연)으로 돌아가서, 우리가 먼저 살아있는 ‘흙’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정치와 경제와 복지와 교육과 종교가 어머니 품 같은 흙에 바탕을 두고 나아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더구나 모든 종교는 흙에 바탕을 두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도시에 수십 억짜리 성당이나 교육관 따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학교와 정치와 단체와 종교 따위는 모두 사이비입니다. 편리함과 돈벌이에 눈이 멀어 입으로만 ‘주님, 주님!’을 팔아먹으며 간식 삼아 생명이니 환경이니 떠들어대는 꼴을 보면 이제 속이 메스꺼워 구역질이 납니다.

교회는 이미 사업체가 되었고, 성직자는 월급쟁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는 일이나  ‘불편한 진실’은 모른 체 하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큰 사업체를 잘 운영하여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이게 지금 우리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회칙 <진리 안에 사랑> 가운데 "모든 경제적 결정은 도덕적 결과를 가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4대강은 결국 경제적 결정에 따라 태어났으며, 교회도 그 바탕 위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습니다. 불도저와 다이너마이트로 강을 죽이고 산과 들을 깨고 부수고 파헤치는 꼴을 보고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아무런 뉘우침도 없이, 지금도 앞으로 앞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닌 것을 그럴 듯하게 꾸며대는 사이비들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앞에 서면 어른이란 게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뿐입니다.

서정홍/ 농부시인, 합천 황매산 자락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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