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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 강성은 시인 (1973-)현대시/한국시 2012. 12. 7. 15:00
커튼콜 / 강성은(1973-)
한밤중 맨홀에 빠진 피에로
집에 가던 중이었는데
오늘 공연은 만석이었는데
어째서 지금 이 구덩이 속에 있는가
그는 구덩이 속에 있는 자
분장을 지운 피에로
분장을 지워도 피에로
공중의 달에게 익살맞게 인사합니다
달님이여 그대는 지금 내 유일한 관객
밤새 내 곁을 떠나지 못할 거요
그는 구더잉 속에 있는 자
비좁은 구덩이 속에서 하염없이 공중만 보고 있다
삼십 년 동안 갈고 닦은 만남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고
구덩이 속에서 지난 세월을 헤집어보지만
떠오르는 건 무대 뒤에서 혼자 분장ㅇㄹ 지우던 날들뿐
여긴 말라버린 우물인가 고래 뱃속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인가
달은 뿌연 커튼 속으로 서서히 모습을 감추고
빗방물은 조금씩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데
거기 누구 없소, 여기 사람이 있어요!
누군가의 키득거리는 웃음소리
그리고 삼십 년 동안 들었던 모든 웃음소리들이
한꺼번에 그의 귀를 찢을 듯 터져 나왔다
그는 귀를 막고 중얼거렸다
제기랄 이제 그만들 좀 하라고
죽을 힘을 다해 구덩이를 기어오른다
미끄러졌다 오르기를 반복하는
그는 지금 분장을 지운 피에로
분장을 지워도 피에로
구덩이 속에 있는 자
**시인 소개**
1973년 경북 의성 출생.
2005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
출처: "현대문학" 2012년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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