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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 삼식이論 / 이명수 (1945-)현대시/한국시 2009. 4. 25. 13:11
몸의 기억 삼식이論 / 이명수 (1945-)
<울기 좋은 곳을 안다> 중에서
참 놀라운 일입니다.
얼마 전 대명포구에 갔을 때에요.
어판장 고무 자배기에서 물 좋은 삼식이 몇 마리를 골랐습니다.
가게 주인은 능숙한 솜씨로 단숨에 목을 쳐 머리는 검은 비닐 봉지에 넣어 주고 몸은 회를 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소주에 삼식이 회를 맛있게 먹었습니다.
삼식이 몸이 내 몸에 들어와 한 몸이 되고 몇 시간이 지났을까, 속이 출출해질 무렵 매운탕 생각이 났습니다. 비닐 봉지를 뒤적거려 머리를 꺼내려는데, 글쎄 그 놈이 손가락을 덥석 물고 놓지 않는 거예요. 순간 삼식이 머리통이 손가락에 달려 나왔습니다. 옆 사람이 대들어 입을 벌리고 살 속에 박힌 이빨을 빼냈습니다. 목 잘린 지 두세 시간이 지난 삼식이가 아직도 살아서 눈을 번득이며 입을 실룩거리는 게 놀라웠습니다.
우린 몰랐지만 생명을 그토록 모진 기억을 명줄로 몸에 담아 두는 거죠. 손가락의 내 아픔도 살아서 피 흘리듯 삼식이에겐 몸의 기억이 생명의 회로에 살아 있는 겁니다.
오늘은 6.25 57주년이 되는 날, 시청 앞 광장에 참전 용사들이 모였습니다. 팔다리가 잘린 상의 용사도 나왔습니다. 57년 전 몸을 잃은 옛 전우들이 의수를 들어 외칩니다.
6.25를 잊지 말자.
분명 57년 전의 몸을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죽어서 살아 있음을 잊지 않듯 살아서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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