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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鼠) / 한용운 (1879-1944)현대시/한국시 2009. 4. 25. 13:36
쥐(鼠) / 한용운 (1879-1944)
나는 아무리 좋은 뜻으로 너를 말하여도
너는 적고 방정맞고 얄미운 쥐라고 밖에 할 수가 없다.
너는 사람의 결혼의상과 연회복을 낱낱이 쪼서놓았다.
너는 쌀궤와 팟멱사리를 다 쪼고 물어내었다.
그 외에 모든 기구를 다 쪼서 놓았다.
나는 쥐덫을 만들고 고양이를 길러서 너를 잡겠다.
이 적고 방정맞고 얄미운 쥐야.
그렇다, 나는 적고 방정맞고 얄미운 쥐다.
나는 너희가 만든 쥐덫과 너희가 기른 고양이에게 잡힐 줄을 안다.
만일 내가 너의 의장과 창고를 롱거리채 빼앗고,
또 너희 집과 너희 나라를 빼앗으면,
너희는 허리를 굽혀서 절하고 나의 공덕을 찬미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의 역사에 나의 이 뜻을 크게 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큰 죄를 지을만한 힘이 없다.
다만 너희들의 먹고 입고 쓰고 남는 것을 조금씩 얻어 먹는다.
그래서 너희는 나를 적고 방정맞고 얄미운 쥐라고 하며,
쥐덫을 만들고 고양이를 길러서 나를 잡으려 한다.
나는 그것이 너희들의 철학이요 도덕인 줄을 안다.
그러나 쥐덫이 나의 덜미에 벼락을 치고 고양이의 발톱이 나의 옆구리에 샘을 팔때까지
나는먹고 마시고 뛰고 놀겠다.
이 크고 점잖고 귀염성 있는 사람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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