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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현성당 / 정호승 (1950-)현대시/한국시 2009. 5. 9. 10:43
약현성당 / 정호승 (1950-)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중에서
서울역을 떠돌던 부랑자 한 사람이
중림동 약현성당 안으로 기어들어와
커튼에 라이터를 켜대었을 때
성당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불이야!
봄을 기다리던 제비꽃이
땅 속에서 소리쳤다
아무리 소리쳐도 성모님은
가만히 불길을 보고만 있었다
천장이 뚫리고 종탑이 무너져내려도
성모님은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불이 꺼진 뒤
무너진 종탑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성당을 찾아온 부랑자들에게
애초부터 밥을 해주지 말아야 했다고
미사를 드렸다
그때 제비꽃은 들을 수 있었다
무너진 종탑에서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를
그들을 미워하지 말자
그들을 돌보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 크다고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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