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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맞이 / 배한봉 (1962-)현대시/한국시 2009. 5. 14. 13:20
봄맞이 / 배한봉 (1962-)
제4회 현대시 작품상 수상시집 <대해 속의 고깔모자>에서
흙냄새 훗훗하니 몸도 가뿐하다
첫 봄비 머금은 나무 둘레
작고 예쁜 손 흔드는 풀들을 보아라
연둣빛 때깔 너무 고와
저 할머니는 허리도 안 아프겠다
실그렁실그렁 거름더미
괭이로 잘 펴고 북돋우면서
사람살이 덮을 게 참 많기도 하지
궁시렁거리기도 하면서
앞산 뒷산 까치 깍깍대는 소리에
열두 번도 더 마을 앞길 훔쳐보는데
영감님은 지난 주 다녀간 아들 며느리
또 오겠냐며 타박 놓고
그 옆에서 깔깔대던 풀꽃들
버릇없이 굴다가 그만
꽃사태 일으키는 것 좀 보아
티격태격 입씨름하는 것도
노래로 치면 노동요
두어 잔 탁배기 새참 같은 것이겠지
훈기 솟는 땅심이 칠십 평생을
이곳에 붙잡아 두었을 거다
피골 상접한 한 시대를
견디는 힘도 이런 땅심일 거다
탈도 많고 덮을 것도 많은 세상살이
시절시절 몸살 한 번 앓지 않고
어찌 알찬 열매 맺으랴
고갯마루 솔은 더 푸르고
뭉텅뭉텅 두엄 쏟아붓는 영감님
이마 땀방울 사뭇 싱그러운 것도
첫 봄비 머금은
흙냄새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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