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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 박용철 (朴龍喆) (1904-1938)현대시/한국시 2009. 5. 30. 16:12
밤기차에 그대를 보내고 / 박용철 (朴龍喆) (1904-1938)
1
온전한 어둠 가운데 사라져버리는
한낱 촛불이여.
이 눈보라 속에 그대 보내고 돌아서 오는
나의 가슴이여.
쓰린 듯 비인 듯한데 뿌리는 눈은
들어 안겨서
발마다 미끄러지기 쉬운 걸음은
자취 남겨서.
머지도 않는 앞이 그저 아득하여라.
2
밖을 내어다보려고 무척 애쓰는
그대도 설으렸다.
유리창 검은 밖에 제 얼굴만 비쳐 눈물은
그렁그렁하렸다.
내 방에 들면 구석구석에 숨겨진 그 눈은
내게 웃으렸다.
목소리 들리는 듯 성그리는 듯 내 살은
부대끼렸다.
가는 그대 보내는 나 그저 아득하여라.
3
얼어붙은 바다에 쇄빙선같이 어둠을
헤쳐나가는 너.
약한 정 후리쳐 떼고 다만 밝음을
찾아가는 그대.
부서진다 놀래랴 두 줄기 궤도를
타고 달리는 너.
죽음이 무서우랴 힘있게 사는 길을
바로 닫는 그대.
실어가는 너 실려가는 그대 그저 아득하여라.
4
이제 아득한 겨울이면 머지 못할 봄날을
나는 바라보자.
봄날같이 웃으며 달려들 그의 기차를
나는 기다리자.
「잊는다」말인들 어찌 차마! 이대로 웃기를
나는 배워보자.
하다가는 험한 길 헤쳐가는 그의 걸음을
본받아도 보자.
마침내는 그를 따르는 사람이라도 되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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