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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余華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사람되기/인문학 2021. 4. 20. 12:06

    원제: 十个词汇中的中国(China in Ten Words)

    제목: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부제: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저자: 여화

    번역: 김태성

    출판사: 문학동네

     

    나는 일찌기 중국의 언론자유에 관해 이렇게 쓴 적이 있다. "내가 독일의 뮌헨문학관에서 강연할 때 독일의 한 독자가 중국에도 언론의 자유가 있느냐는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나는 당연히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얘기를 계속했다. '어느 국가든 간에 언론의 자유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국민들이 총리를 욕할 수 있지만 이웃 사람을 욕해선 안 될 겁니다. 중국에서는 총리를 욕해선 안 되지만 이웃은 욕할 수 있지요.'" (10쪽)

     

    고대 그리스의 맹인 시인 호메로스는 "신은 후대 사람들이 노래할 소재가 부족하지 않도록 불행을 만들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중국의 선철 맹자는 "우환에 살고 안락에 죽는다 生於忧患,死於安乐。"라고 말했다. (16쪽)

     

    내가 이 단어(인민)를 거짓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만났다고 할 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어학, 사회학, 인류학적인 의미에서의 만남이 아니다. 그건 인생의 경험 속에서 얻은 진실한 만남, 모든 이론과 정의를 제거하고 난 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만남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나 자신에게 '인민'이라는 단어가 절대로 공허한 단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이미 피와 살을 갖춘 '인민'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37쪽)

     

    그 전까지 나는 빛이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고, 또 사람의 목소리는 사람의 몸보다 에너지를 더 멀리 전달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스물아홉 살 그 밤에 나는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민이 단결할 때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되는 것이다. 마침내 나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전정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39쪽)

     

    만일 문학에 정말로 신비한 힘이 존재한다면 나는 아마도 이런 것이 그 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독자로 하여금 다른 시대,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언어, 다른 문화에 속한 작가의 작품 속에서 자신의 느낌을 읽을 수 있게 하는 힘 말이다. 하이네가 쓴 시("죽음은 서늘한 밤이다.")가 바로 내가 유년 시절 영안실에서 낮잠을 잘 때의 느낌이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다." (109쪽)

     

    인생은 종종 이렇다. 때로는 담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장점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장점에서 출발한 것이 갈수록 단점이 디기도 한다. 마오쩌둥의 말을 빌리자면 "좋은 일이 변해 나쁜 일이 되고, 나쁜 일이 변해 좋은 일이 된다"라고 할 수 있다. (136쪽)

     

    젊은이들이 내게 묻곤 했다. "어떻게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었나요?" 나의 대답은 하나다. 바로 '글쓰기'. 글쓰기는 경험과 같다. 혼자서 뭔가 경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이해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직접 써보지 않으면 자신이 무얼 쓸 수 있는지 모른다. (137쪽)

     

    나는 글쓰기가 사람의 심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되고 인생을 더욱더 완전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또는 글쓰기가 사람들에게 두 갈래 인생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는 현실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호구의 길이다. 이 두 길은 건강과 질병의 관계와 같아 하나가 강해지면 다른 하나는 필연적으로 약해진다. (147쪽)

     

    한 사람이 성장해온 과정이 그의 일생을 결정한다. (148쪽)

     

    모든 위대한 작가들은 위대한 독자를 필요로 한다. (177쪽)

     

    서른여섯 살이 되던 해의 그날 저녁 나에게 루쉰은 마침내 하나의 단어에서 하나의 작가로 돌아왔다. 나는 때때로 한 독자와 한 작가의 진정한 만남에는 어떤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작가가 하나의 단어가 된다는 것은 사실 그 작가 본인에게 커다란 손해다. "위화 선생이 어렸을 때 루쉰을 싫어했던 것이 내가 어렸을 때 입센을 싫어했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군요." (182-183쪽)

     

    극단적으로 억압된 시대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반드시 극단적으로 방종하는 시대를 조성한다. (194쪽)

     

    '산채(뫼산山울짱채寨)'라는 단어가 '모방'이라는 단어에 새로운 함의를 가져다주었다. (291쪽)

     

    중산복(中山服, 1911년 중국 신해혁명 지도자 손문이 생활의 편의를 위해 창안한 복장으로 쑨원의 호인 '중산'에서 유래되었다. 일명 인민복이라고도 한다.) (294쪽)

     

    과거에는 속임수라고 했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 홀유(소홀할'홀'忽멀'유'悠)라고 한다. (345쪽)

     

    타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 되었을 때, 나는 진정으로 인생이 무엇인지, 글쓰기가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세상에 고통만큼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쉽게 소통하도록 해주는 것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통이 소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은 사람들의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 뻗어나오기 때문이다. (353쪽)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명제 (358쪽)

     

    **이 책에 대한 개인적 소감**

    저자가 소설가이지만 이 책의 내용이 내용인지라 이 책이 진지하고 졸음을 불러올 지 모를 거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앞서 읽은 소설 <허삼관 매혈기>처럼 술술 잘 읽힌다. 특히 109쪽에서 문학이란 문화, 언어, 민족 등을 떠나 누구에게나 공감을 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는 말이 새삼스런 건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인상깊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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