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한국시

(詩) 길 – 박영근 시인

밝은하늘孤舟獨釣 2023. 2. 12. 23:02

박영근 시인


장지문 앞 댓돌 위에서 먹고무신 한 켤레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동지도 지났는데 시커먼 그을음뿐
흙부뚜막엔 불 땐 흔적 한 점 없고,
이제 가마솥에서는 물이 끓지 않는다

뒷산을 지키던 누렁개도 나뭇짐을 타고 피어나던 나팔꽃도 없다

산그림자는 자꾸만 내려와 어두운 곳으로 잔설을 치우고
나는 그 장지문을 열기가 두렵다

거기 먼저 와
나를 보고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저 눈 벌판도 덮지 못한
내가 끌고 온 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