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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님의 옷자락 - 신달자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1. 19. 12:08
신달자 시인이 천주교 신자인 줄은 모르고 있었는데, 북촌이란 시집을 읽으면서 알게 되어, 신앙을 표현한 시인의 시 한 편을 아래에 저자와 출판사의 동의도 없이 무례하게 소개한다. 영리 목적이 아닌만큼 양해하시리라 믿는다.
성모님의 옷자락 - 신달자 시인
이른 새벽
목력 꽃잎 하나 같은 문 열고 어둠 한 가닥 당깁니다
잡고 보니 성모님의 옷자락입니다
검은 어둠을 당긴 것인데
푸르스름한 청색 옷깃입니다
만집니다 마십니다 끌어안습니다
순간 오늘 다시 태어난 미움과 증오가 술술 풀려 흐릅니다
오늘 새벽에 태어난 미움과 증오는 아기 울음소리를 냅니다
내 마음의 몸의 매듭들이 따라웁니다
오후가 되면 미움과 증오도 나이가 듭니다
나이가 들기 전에 울음을 그치게 합니다
연한 새싹 같은 매듭들이 숨 쉴 때마다
말할 때마다 굵어집니다
근육이 굵어지는 시간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죄의 깃이 펄럭입니다
그때마다 허공을 잡아당깁니다
성모님의 옷자락이 잡힙니다
늦은 밤
청솔 가지 하나 누가 내 입술연지만 한 문에 달아 놓았어요
나는 내내 안녕할 것입니다
잠들기 전 화해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민음의 시 227, 민음사, 2016년, 신달자 시집 <북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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