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밭머리에 서서 - 박목월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1. 20. 12:10
밭머리에 서서 - 박목월 시인
저 빛나는
저 충만한 생명의 주인은
따로 계신다
저 충만한 생명의 주인은
따로 계신다
우리 이마 위에 해를 뜨게 하고
후끈한 사랑으로 가슴을 덥게 하고
촉촉히 비를 뿌리시는
아아 그분의 어지신 경영
너그러운 베푸심
너무나 벅찬 생명의 광휘에
나는 다만 넋을 잃을 뿐
저 황홀한 푸름
저 넘치는 자라남
나는 밭머리에 서서
밭 임자가 누굴까 생각한다.
명목상 밭 임자야
내가 틀림없지만
저 줄기찬 성장
저 황홀한 생명의 광휘
싱싱하게 빛나는
밭머리에 서서
나는, 밭 임자가 누굴까
명목상 밭 임자야
내가 틀림없지만
명목상 밭 임자야
내가 틀림없지만
무슨 힘으로 내가
생명을 눈 뜨게 하고,
땅 속에 뿌리를 펴게 하고,
저 잎사귀 하나마다
황홀한 광채를 베풀 것인가
나는 다만 어리석고 성실한
일꾼에 지나지 않다
때가 되면 씨앗을 뿌리고
때가 되면 호미로 김을 맬 뿐
2012년 민예원이 간행한 박목월 유고 시집 <크고 부드러운 손> 중에서
'현대시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버지의 마음 - 유안진 시인 (0) 2023.11.22 물수제비 - 남재만 시인 (2) 2023.11.20 성모님의 옷자락 - 신달자 시인 (4) 2023.11.19 헛신발 - 신달자 시인 (0) 2023.11.16 수양(修養)대군 – 천양희 시인 (0) 2023.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