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시인
    현대시/한국시 2023. 11. 23. 22:21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시인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었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할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천양희 시집 <새벽에 생각하다> 중에서

    '현대시 > 한국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 지는 날 – 도종환 시인  (2) 2023.11.24
    기울음 - 김용국 시인(1952-)  (0) 2023.11.24
    단풍 드는 날 – 도종환 시인  (2) 2023.11.23
    술 - 고은 시인  (0) 2023.11.22
    출가 - 고은 시인  (2) 2023.11.22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