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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로 빚어진 사람 - 김선우 시인
    현대시/한국시 2023. 12. 4. 09:11

    물로 빚어진 사람 - 김선우 시인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내 몸에서 바다 냄새가 나네

     

    깊은 우물 속에서 계수나무가 흘러나오고

    사랑을 나눈 달팽이 한쌍이 흘러나오고

    재 될 날개 굽이치며 불새가 흘러나오고

     내 속에서 흘러나온 것들의 발등엔

    늘 조금씩 바다 비린내가 묻어 있네

     

    무릎베개를 괴어주던 엄마의 몸냄새가

    유독 물큰한 갯내음이던 밤바다

    왜 그토록 조갈증을 내며 뒷산 아카시아

    희디흰 꽃타래들이 흔들리곤 했는지

    푸른 등을 반짝이던 사막의 물고기떼가

    폭풍처럼 밤하늘로 헤엄쳐 오곤 했는지

     

    알 것 같네 어머니는 물로 빚어진 사람

    가뭄이 심한 해가 오면 흰 무명의 붉은,

    월경 자국 선명한 개짐으로 깃발을 만들어

    기우제를 올렸다는 옛이야기를 알 것 같네

    저의 몸에서 퍼올린 즙으로 비를 만든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

     

    월경 때가 가까워오면

    바다 냄새로 달이 가득해지네 

     

       서정윤 시인의 해설

       우리 사회에서 월경이라는 말은 금기어이다. 어쩌면 신성한 것이니 조심해서 입에 올리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인은 월경을 '바다 냄새'라 했다.

       아기집을 청소하는 일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성한 행위가 아닌가. 그럼에도 근대사회까지 월경 중인 여성들은 불결하다고 멀리 했었다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어머니, 어머니의 어머니, 맨 처음의 어머니까지 이어지는 이 선명하고 확실한 생명의 행위에 대해 우리는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

     

    이가서에서 2007년 출판한, 서정윤이 엮은 시모음집 <견딜 수 없는 사랑은 견디지 마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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