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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 양애경 시인현대시/한국시 2023. 12. 11. 16:06
아래는 라디오 어느 프로그램의 막간에 소개된 시이다.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 - 양애경 시인
날마다 한치씩 가라앉을 때
주변의 모두가 의자째 나를 타고 앉으려고 한다고
나 외의 모든 사람에겐
웃을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될 때
집으로 돌아오는 밤길
눈길 스치는 곳곳에서
없는 무서운 알굴들이 얼핏얼핏 보일 때
발바닥 우묵한 곳의 신경이
하루종일 하이힐 굽에 버티느라 늘어나고
가방 속의 책이 점점 늘어나
소용없는 내 잡식성의 지식의 무게로
등을 굽게 할 때
나는 내 방에 돌아와
바닥에 몸을 던지네
모든 짐을 풀고
모든 옷의 단추와 걸쇠들을 끄르고
한쪽 볼부터 발끝까지
캄캄한 속에서 천천히
바닥에 들러붙네
몸의 둥근 선이 허락하는 한도까지
온몸을 서서 나는 바닥을 잡네
바닥에 매달리네
땅이 나를 받아주네
내일 아침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그녀가 나를 지그시 잡아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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