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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가을 산 - 안도현 시인(1961-)현대시/한국시 2024. 1. 30. 22:01
외국인이 아닌, 토종 한국인인, 그것도 내일이 환갑인, 시를 좋아하는 남자 사람인, 나는 시집을 읽으면서 한국어를 공부한다. 무슨 소설을 읽는 것도 아닌데, 자주 모르는 단어들이 등장하여 사전을 찾아본다. 아래에 소개하는 시에도 모르는 단어, 혹은 생소한 단어, 내가 어렸을 적에 배웠거나 접했는데, 평상시에 쓰지 않아 잃어버렸던 단어가 두 개나 등장한다.
시를 읽는 재미도 좋지만, 이처럼 모르는 혹은 생소한 단어, 낯선 낱말을 만나는 것이 마치 낚시에서 물고기를 새로 낚은 기분처럼 묘한 설레임을 준다. 이래서 시를 읽는다. 사도 바오로 서간에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린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문자, 단어, 낱말이 이렇게 나를 요즘 말로 플러팅(flirting, 이성과 히히덕거리다, 추파던지다, 유혹하다는 뜻)하는 게 참 좋다. 나는 靈(the Spirit, Spirituality)을 지향하는 사람이지만, 나는 이렇게 문자가 좋으니, 어쩌면 좋은 지 모르겠다.
낱말의 뜻을 찾아 보고 나면, 아래의 시는 결코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는 아닌 것이다. 약간, 아니, 성적인 상상력도 자연스럽게 끼여드는 저속하게 볼 수도 있는, 결코 저속하지 않은 이미지로 그려지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과 같은 시이다. 어떻게 이런 발직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과연 프로 시인은 시인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도 이런 시를 쓰고 싶다.
가을 산 – 안도현 시인(1961-)
어느 계집이 제 서답을 빨지도 않고
능선마다 스리슬쩍 펼쳐놓았느냐
용두질 끝난 뒤에도 식지 않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것을
햇볕 아래 서서 꺼내 말리는 단풍나무들
낱말 해설
1) 서답: ‘개짐’의 방언. 개짐은 여자가 월경 때 샅에 차던 헝겊. 요즘 말로 옛날 생리대.
2) 용두질: 영어로는 masturbation이라고 말함. 예전에는 수음(手淫)이라 일컬었고, 요즘에는 자위(自慰)라고 함.
- 안도현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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